현대산업사회에서 성공은 최대의 가치다.

누구나 성공을 꿈꾸고 특히 젊은 나이에 거둔 성공은 더욱 값지게
평가된다.

그러나 여기 "성공"이라는 이름에, 자신에게 비춰진 사회의 화려한 조명에
낯설어하는 사람이 있다.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옷신령"이란 독특한 의류브랜드의 디자이너인 임수정씨(25).

그녀는 어린 나이에 4명의 보조디자이너와 30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연간
수십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어엿한 사장님이다.

그녀가 디자인한 옷들은 20대 중.후반 전문직여성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단골손님들 중에는 연예인과 아나운서들이 많다.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한지 겨우 2년여.

무수히 많은 디자이너들이 등장했다 사라지는 패션계에서 그녀가 이렇게
우뚝 서기까지의 과정은 어땠을까.

그녀가 어렴풋이나마 처음 디자이너의 꿈을 가지게 된 것은 고등학교때다.

예술중과 예술고에 다니면서 순수회화를 자신의 길로 생각하던 그녀가
고교시절 한국무용공연을 보면서 화려한 무대의상에 반해버렸다.

"전통과 현대가 혼합된 한국무용의 색다른 의상들을 보면서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감탄했지요"

대학을 진학하며 그녀는 전공을 복식디자인으로 바꿨고 곧 "옷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마음편히 옷 디자인을 하며 지내던 대학시절이 끝나고 졸업이 눈앞에
닥치자 그녀는 고민에 빠졌다.

일반 의류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어찌보면 가장 쉬운 길이었지만 그녀는
흔히 다른 디자이너들이 그렇듯 멋쟁이로 꾸미고 사무실에 앉아 디자인을
한다는게 내키지 않았다.

그녀의 변이다.

그래서 졸업후 한동안 그녀는 유명디자이너인 홍미화씨의 작업실에
쫓아다니며 패션쇼 출품작을 만드는 일을 거들었다.

"홍미화선생님은 제가 가장 본받고 싶은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어요.

선생님은 집에서 추리닝차림에 머리에 바늘을 꽂고 일하시죠.

몇시간씩 계속되는 작업중에는 화려하고 멋진 디자이너가 아니라 그냥
옷만드는 여자가 되는 거예요.

그것도 굉장히 잘 만드는 여자"

다른 디자이너사무실에서도 잠깐잠깐 일해봤지만 자신의 옷을 자유롭게
만들고 싶다는 욕구는 너무나도 강렬했다.

드디어 그녀는 94년 10월, 졸업한지 8개월만에 무리해서 이대앞에 자신의
숍을 냈다.

"물론 저 혼자의 재력으론 어림없었죠.

부모님이 선뜻 지원해주셨으니 저는 운이 좋은 편이에요"

여기서 풀어놓는 부모님자랑 하나.

"인테리어사업을 하시는 어머니는 딸셋 모두에게 "여자도 자기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사고를 어려서부터 확고히 심어주셨어요.

그런 분이니 제가 숍을 낼 때도 전폭적인 지지와 투자를 해주셨죠"

임대료가 비싼 이대앞에서 값이 싼곳을 찾느라 후미진 뒷골목에 간신히
얻은 구멍가게만한 10평짜리 점포가 바로 "옷신령"1호점이다.

선전도 광고도 전혀없이 조용히 문을 연 옷신령은 독특한 디자인의
옷들이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나면서 놀랍게도 첫 한달동안 2,000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대성공을 거뒀다.

"저도 놀랐어요.

그렇게 많이 찾아주실 줄 몰랐죠"

그녀는 옷신령의 독특한 스타일인 "60,70년대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복고풍"이 고객들의 눈길을 끌었는가 보다고 얘기한다.

"특별히 유행을 의식하고 만든 건 아닌데, 때마침 복고바람이 불면서
히트를 친 셈이죠"라며 웃는다.

서양이름이 판치는 패션업계에 복고풍의 디자인과 맞물려 "옷신령"이라는
특이한 브랜드도 크게 어필했다.

"옷신령이라는 이름은 대학교때 우연히 생각해낸 거예요.

고대신화를 각색한 만화를 보는데 꼬마요정들이 나와 서로 나무신령이니
물신령이니 부르는 걸 봤지요.

귀엽다싶어 이 다음에 내 브랜드를 갖게되면 나는 옷신령이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본인은 귀엽다고 붙인 이름이지만 손님들은 좀 무서워한다고 한다.
한번은 점포로 냉장고배달을 부탁했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안와 웬일인가
했더니 배달원이 "옷신령"이란 이름을 듣고 이대앞의 점집을 뒤지느라
늦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이대앞 숍이 히트를 치면서 그녀는 올해 5월 명동 패션전문백화점
유투존에도 입점, 이제는 2개 매장을 갖게 됐다.

지금도 다른 백화점에서 입점해달라는 요청이 자주 들어오지만 그녀는
망설이고 있다.

"저는 제 브랜드를 아주 크게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매장은 많아야 5,6개 정도? 지금의 희망은 5년안에 사옥을 지어 번듯한
의상실을 하나 내고 공장과 사무실을 합치는 정도죠"

사업규모를 키워 많은 돈을 벌기보다는 "옷신령하면 임수정, 임수정하면
옷 잘 만드는 여자"로 기억되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작으면서도 큰 꿈이다.

<권수경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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