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홍균 서울은행장이 대출관련비리 혐의로 지난 22일 구속되자 금융계의
반응은 착잡하다.

고질적인 내분과 비리로 번번이 사정바람에 된서리를 맞곤하니 언제 국제
경쟁력을 갖추겠느냐는 탄식에서부터 왜 시중은행만 희생양이 돼야 하느냐는
다소 엉뚱한(?) 불만도 있는 모양이다.

문제는 왜 금융 비리가 끊이지 않으며 근본적인 방지대책이 무엇이냐는
점이다.

사정당국은 더이상의 비리관련자는 없다고 밝히면서 금융계의 동요를 막고
이번 사건을 손행장 개인비리로 처리하려는 인상이 짙다.

그러나 은행업무의 성격상 과연 더이상의 관련자가 없는지 의문이며 현
정부 집권이후 3년반동안에 16명이나 되는 은행장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물러난 것을 보면 특정은행이나 특정개인의 비리라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이같은 생각은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어디 있겠느냐"며 정보수집에
바쁜 금융계의 움직임이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처럼 금융비리가 뿌리깊이, 그리고 폭넓게 퍼진 가장 큰 이유는 정치
권력의 개입 및 은행에 주인이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 두가지 요인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다.

우선 은행에 주인이 없다보니 막강한 권한을 가진 은행장선출을 둘러싸고
권력층의 입김이 작용할 여지가 많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치권력에 줄을 대려 애쓰고 지연 학연을 동원한 파벌이 생겨
내분이 끊이지 않는다.

은행장 선출과정이 이렇다 보니 결과에 승복하기 어렵고 도움을 준 외부의
청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재정경제원은 비상임이사를 통한 은행장권한분산이
필요하다고 보는 모양이나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은 은행의 대주주가 인사를
포함한 경영을 책임지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인사잡음과 대출비리가 사라지고 객관적인 실적으로 평가되는
풍토가 정착되며 합병을 통한 대형화나 경쟁력 강화도 가능해진다.

이점에서 서울은행이 합병으로 생겨나 문제가 많다든지, 투서가 난무하는
금융계풍토를 탓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됐거나 핵심을 외면하는 평가라고
생각된다.

또 한가지 요점은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정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공직자 재산공개강화, 인사청문회, 내부고발자보호, 돈세탁방지
등의 강력하고 포괄적인 장치가 포함돼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타인명의의 통장을 이용한 뇌물수수 및 돈세탁수법이
동원돼 금융실명제를 피해갔음이 드러났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마련해도 일선 금융기관에서 지키지 않으면 그만이다.

더구나 금융시장개방으로 무한경쟁을 벌여야 하고 은행주인을 찾아주자면
은행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부패방지장치의 강화는 필수적이다.

윤리의식의 강조나 본보기 사정만으로는 고양이목에 방울을 달 수 없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경쟁력 10%이상 올리기"구호가 요란한 가운데 장관, 서울시, 금융계에서
잇따라 터져나온 비리들은 국민을 허탈하게 만들고 있다.

뭔가 획기적인 조치와 구체적인 행동이 있어야겠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