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점 "시인학교"는 말그대로 시가 어울리는 곳이다.

토담벽엔 굵직한 아름드리 통나무가 듬성듬성 박혀있고 지게로 방금 해온
뗄감들이 난로가에 어지럽게 놓여 있다.

시골학교에서나 볼수 있는 구식난로는 하얗게 장작 불꽃을 일으키며
흙바닥에 그림자를 뱉어낸다.

케이블을 감는 도르레를 고쳐 만든 탁자도 그렇고 구유에 잔뜩 쌓아 놓은
시집들도 "시.다.

주"가 교훈이라는 이 곳의 분위기를 그대로 말해준다.

차문짝을 고쳐 만든 창문이 한편에 높다랗게 걸려 있고 그 옆엔

"...까치를 위해 홍시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라고 쓴
김남주시인의 시가 걸려있다.

짧은 시구를 읽고 있자니 시인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오는 듯하다.

시만 감상하면 자칫 무료할까봐 시인인 주인(정동영씨.36)은 해물을
잔뜩 넣은 파전과 구색에 맞는 막걸리를 내놓는다.

"막걸리를 먹으면 취해 어떻게 시가 제대로 나오겠느냐"는 은근한 질문에
"시선주라 생각하면 시구가 절로 나올것"이라며 기분좋게 응수하는 그 맛이
더 일품이다.

주인은 또 추천급식으로 누룽지 주먹밥도 권한다.

18가지 재료를 넣어 만들었다는 이 주먹밥은 맛이 독특할 뿐아니라 술을
마시기 전에 먹어두면 속이 든든하다고.

"불타는 새우"와 "특선 해물탕"도 이 집이 자랑하는 메뉴들.

손님들은 술도 마시고 시집도 꺼내 읽다 시상이 떠오르면 끼적댄다.

또 교실을 나가다가 복도에 걸려있는 칠판에도 시를 적어 놓는다.

주인은 이 글을 모아 "시인학교"란 제목으로 벌써 3권째 시집을 펴냈다.

그래서 "시인학교는 입학만 하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시인학교의 입학자격은 남녀노소 관계없다.

그러나 "막걸리 한잔 할 수 있는 풍류기질은 있어야 하고 이왕이면 시를
논할 수 있는 젊은 남녀라면 더 좋지 않겠느냐"는게 유난히 친절한 이집
주방장의 말이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면 "시인학교"의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젊은
연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0344)906-0663

< 박수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