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정씨(34)를 연극연출가라고 소개하면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들이
많을 것같다.

연극에 별관심이 없다면 TV드라마나 영화에서 주로 감초역할을 개성있는
얼굴만큼이나 개성있게 해내는 모습만을 떠올릴 테니 말이다.

아니면 모맥주사의 CF모델정도로 기억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의 실제 모습은 올연극가의 최대히트작이라 할만한 "비언소"
(이상우작 극단차이무)를 탄생시킨 실력있는 연극연출가다.

지난 92년말에 세태풍자극"마술가게"(이상범작 극단연우무대)로 데뷔,
단번에 재능을 인정받고 한국백상예술대상 신인연출상까지 받는다.

94년에는 문제작 "저별이 위험하다"(김광림작)를 발표, 신선한 감각을
선보인다.

세번째 연출작인 "비언소"는 분단과 통일, 이데올로기의 후유증,
중년남자의 고민, 성폭력등 우리시대의 심각한 문제들을 신랄한 풍자와
웃음으로 풀어낸 작품.

지난 8월에 무대에 올려 석달동안 2만여명이 찾아들었다.

소극장공연에 이정도 관객동원이라면 연극계의 시쳇말로 "박터졌다"고
할만하다.

그의 작품들은 플롯위주의 정통연극스타일은 아니다.

다양한 영상과 음악, 실험적인 구성등 이른바 신세대적 기법을 동원,
세상의 많은 이야기를 담아 왔다.

한편에선 진지하지 못하다느니 영상세대에 쉽게 영합하느니 하는 비판이
만만찮으나 그의 생각은 다르다.

"90년대에 맞는 연극은 어떤 것일까 늘 고민하면서 새롭고 실험적인
시도를 해 왔습니다.

시대감각과 변화를 놓치지 않으면서 소재나 형식에서 기존의 틀과는
다른 대안적인 작품을 만들려고 합니다"

나이가 들고 삶에 대해 좀더 잘 알게 되면 체호프의 작품같은 진지한
정통연극도 하고 싶지만 지금은 자신있게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고.

광주에서 3남3녀의 막내로 태어나 마음대로 놀면서 자랐다는 그가 평생
연극을 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군을 제대할 무렵.

"제가 언제 가장 즐겁고 열정적이었나 생각해보니 연극반에서 여럿이
함께 뒹굴며 작품을 만들 때였어요"

음악을 무척 좋아해 DJ나 라디오음악PD가 되는 것이 어릴적 꿈이었지만
성균관대 금속공학과에 입학, "능라촌"이라는 연극반에 우연히 들어간 것이
삶의 방향을 바꿔놓은 셈.

"그 이후 연극인으로서 제 삶은 참 운이 좋았어요.

제대하자마자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입학, 최형인 신일수 김광림등 쟁쟁한
선생님밑에서 공부했고 극단연우무대와 인연을 맺어 배우와 스태프로
활동하면서 좋은 선배와 동료를 많이 알게된 것, 특히 김광림 이상우등
사부급 대선배들에게 작품을 받을 수 있었던 점이 그렇죠"

TV드라마연출가들의 "객석캐스팅"이 본격화됐던 94년부터 그도 연기자로서
드라마나 영화에 얼굴을 자주 내밀며 활동영역을 넓힌다.

"진정한 프로가 되기 위해 다른 장르의 프로들이 어떻게 하고 있나
볼 수 있어 좋지요.

두아이를 둔 아빠로서 생계문제도 고려해야죠.

저같이 개런티를 제대로 받는 경우에도 연극만으로는 생활이
빠듯하니까요"

그의 삶터인 대학로의 현재 풍토에 대한 생각은 일반과는 차이가 난다.

"저질 코미디나 외설극들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지만 관객들은 결국
땀흘리고 노력하는 연극을 찾을 것이라 생각해요.

오히려 무언가 틀지우고 규격화하려는 움직임이 불만입니다.

다양한 예술행위가 자유롭게 펼쳐지는 해방공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대학로에서 만큼은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하는 그의 말에는 인간에 대한
궁극적인 믿음이 배어난다.

"연극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관객들에게 아름답고
좋은 세상에 대한 꿈을 조금이라도 심어주고 싶어요"

<송태형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