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전자업체간에 2차 전자대전이 벌어지고 있다.

반도체에 이은 두번째 전장은 TFT-LCD (초박막 액정표시장치).

세계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의 아성에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전자 등 국내 업계가 도전을 시작한 것.

국내업계는 일본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양산이라고 해봐야 작년과 올해 막 시작했다.

그러나 의욕만큼은 어느 누구 못지 않다.

"한국업계는 앞으로 2~3년안에 샤프나 도시바 같은 선발업체와 경쟁하는
LCD 대메이커로 부상할 게 틀림없다.

특히 우리가 한국 기업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이들이 "융단폭격" 식으로
밀어붙일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일본 노무라 연구소 와카바야시 히데키 연구원)라는 말처럼 일본의
전문가들도 한국이 무서운 적수임을 인정하고 있다.

한국이 일본 추격에 급피치를 올리고 있다는 것은 생산계획에서 잘
나타난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두번째 생산라인을 완공했다.

첫번째 라인을 세운지 1년만이다.

12.1인치 제품은 월 11만장, 10.4인치는 월 18만장씩 양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다.

LG전자는 12.1인치 제품을 월 5만4,000장씩 생산하고 있다.

98년에는 월 11만장으로 확대한다.

현재 파일럿 라인을 가동중인 현대전자도 이달부터 12.1인치 제품을
월 6만장씩 생산할 방침이다.

현대는 98년 가동을 목표로 두번째 라인도 착공했다.

공장을 가동하기도 전에 다음 생산라인 설치를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한일업계가 이처럼 TFT-LCD분야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미래의 핵심 표시장치로 꼽히고 있어서다.

제2의 반도체라고 불릴 만큼 캐시 카우 (cash cow : 떼돈을 벌어준다는
뜻)로서 기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징조는 노트북PC의 판매동향에서 엿볼 수 있다.

노트북PC는 일반 브라운관을 사용하는 데스크톱 PC와 달리 TFT-LCD로
화면을 나타낸다.

올해 TFT-LCD를 채용한 노트북PC의 예상판매대수는 741만6,000대.

작년보다 76.7% 늘어난 수치다.

반면 데스크 톱 PC는 제자리 걸음이다.

PC의 주력 제품이 데스크 톱에서 노트북으로 전환되고 있고 따라서
TFT-LCD 시장은 활짝 열리고 있다는 얘기다.

단지 PC뿐이 아니다.

TV를 비롯한 모든 영상표시장치에 사용될 수 있다.

TFT-LCD가 사용될 경우 영상기기는 공간적 제약을 덜 받게 된다.

벽에도 걸 수 있고 비행기나 버스의 자리마다 쉽게 설치할 수 있다.

또 TV뿐 아니라 모든 영상표시 기기에 채용할 수 있게 된다.

활용폭이 넓다는 것만이 TFT-LCD의 장점은 아니다.

화질면에서 HD (고화질)TV를 웃돈다.

브라운관에서 나오는 빛이 없어 눈의 피로가 훨씬 적다.

문제는 국내 업계가 과연 이처럼 단 과실을 딸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국내 업계를 방해할 것으로 우려되는 것은 일본 업계의 견제구.

사실 한국업체들이 이 제품의 양산을 시작한 올초부터 TFT-LCD값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일부에는 이같은 가격동향을 일본 업계의 "장난"으로 보고 있다.

세계 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일본업계가 물량을 대폭 늘림으로써
가격을 떨어뜨렸다는 것.

여기에는 막 생산을 시작한 한국 업계의 싹을 말려버리자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또 국내업계로서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그중에서도 기초기술이 없다는 약점에 대한 대응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기초기술이 없다는 것은 특허권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다.

일본 업계가 특허 공세를 펼 경우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업계로서는 맨손에서 일본을 거꾸러뜨린 소중한 경험을
갖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의 "기적"이다.

TFT-LCD에서 또 다른 신화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인지 주목된다.

< 조주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