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하반기가 시작되면서부터 우리 경제가 불황국면으로 치닫고
있다고 아우성들이다.

수출을 주도해 왔던 반도체의 경우 값이 폭락해 수출경쟁력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으며 중소기업을 하는 사람들은 자금난과 고금리에
허덕이고 있다.

또 주식값은 큰폭으로 하락하고 무역수지 적자국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로부터 시장 추가개방에 대한 압력은 높아만
가고 있다.

심지어 무역수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국내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과소비추방운동까지 문제삼으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신도시를 중심으로 전세값이 연초보다 30-40%가 폭등해
매매가격의 급속한 상승을 부추길 위험성까지 표출되고 있어 또다시
악몽의 1989년이 재현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바로 몇달전까지만 해도 정부산하 국책연국기관에서 2천년대의 한국
경제에 대한 장미빛 청사진을 제시한 뒤라 불황도래에 대한 이러한
두려움과 야단법석은 경제를 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헷갈려서
갈피를 잡지 못할 지경이다.

아무튼 많은 사람들의 인정여부와 관계없이 외관상 나타난 징후들은
한국경제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불황의 책임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지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불황의 책임소재는 여러곳에서 찾을 수 있겠으나 그중의 하나가
80년대 이후 역대정권이라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볼때 한국경제의 불황, 또는 모래성화를 더욱 부채질한
것은 5공정권때부터 그 뿌리를 찾아야 한다고 여겨진다.

80년대초 당시 전두환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후 얼마지나지 않아
서아프리카 여러나라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현지에서 만나본 대학교수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진심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목적때문이었는지 알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의 경제수준을
일본과 동일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정부의 과도한 홍보가 이들의
순진한 착각을 불러왔을 가능성때문에 두렵기조차 했다.

실제 이들은 우리나라 경제수준을 일본과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도와
달라고 주문했다.

바로 여기서부터 한국경제의 과대포장이 시작됐으며 6공들어서는
북방외교를 명분으로 외국에서 돈을 들여와 구소련에 차관을 제공하는
비상식적인 행태가 나타나기도 했다.

빌려준 돈에 대한 이자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서 자신이
부담하는 근로소득세를 아까워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합법성이 결여된 정권장악이나 국내정치상의 실수를 국민들로
하여금 선진국병에 걸리게 함으로써 벗어나려한 과거 정부정책들도
오늘날 불황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다.

현재 문민정부의 경제정책은 제대로 가고 있는가를 따져볼때 대답은
결코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물론 지난 93년 12월 15일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로 개방의 파고와
압력은 더욱 거세지고 있는 탓에 과거보다 훨씬 노출되고 경쟁 또한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선진국병과 과소비는 한층 더 기세를 부리고
있으며 국민소득 1만달러의 국가임을 믿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분명한 것은 아직도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경제수준에 비춰 뒤쳐진 정치 사회 문화적 제요인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단순 관광객이 아프리카를 누비고 있으며 태국을 포함한
동남아 지역에서의 보신관광과 싹쓸이 쇼핑, 알라스카의 연어낚시 관광
등이 성행중이다.

해외로만 향하는 많은 인파를 보면서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재삼 생각케 된다.

정말 정신차리지 않으면 빚잔치를 벌여야 하는 기막힌 상황이 우리
앞에 현실로 다가올 지도 모른다.

지금 21세기 무한경쟁시대를 눈앞에 두고 우리를 둘러싼 국제경제
환경은 급변하고 있으며 일본경제권과 중화경제권사이에 놓인 우리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고 있다.

또한 아시아의 호랑이인 타일랜드와 말레이지아 등의 추격도 만만치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경제가 환상의 모래성이 되지 않으려면 몇가지
정책들이 과감하게 추진돼야 할 것이다.

첫째 정부는 불확실한 장미빛 전망을 통해 국민들에게 과도한 기대감을
안겨줘서는 안된다.

만약 그럴 소지가 있는 정책들이 현재 진행중이거나 계획돼 있다면
재고할 필요가 있다.

둘째 정부의 규제는 과감히 철폐해 모든 경제행위가 시장의 경쟁원리를
바탕으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이와함께 공기업의 민영화에 박차를 가해야 하며 정부투자기관의
경영에 있어 경영진의 태만과 부주의로 엄청난 손실이 발생했다면
최근 프랑스에서 있었던 것 처럼 형사책임까지도 물어야 한다.

물론 반대급부차원에서 경영실적이 양호한 곳이라면 파격적인 처우
보장도 필요할 것이다.

셋째 외화내빈격인 행사들은 가급적 줄이고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
들에게 경제적 이익이 되는 실속있는 정책이 요구된다.

우리를 대외적으로 알림으로써 생겨날 수 있는 여러가지 이익 자체를
부정하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곳간이 차야 인심도 나는 법이다.

2천년대 무한경쟁의 시대에는 어느 조직, 또는 국가라 하더라도
경쟁력없이는 존립이 불확실하다.

따라서 국가와 기업, 그리고 국민들이 서로 견제하고 감시하며
협력함으로써 기반을 탄탄히 할때 구호만의 모래성이 아닌 진정한
선진국으로서의 위상이 세워질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