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회사에 근무하는 정태욱씨(26.남)는 하루 평균 6시간이상을
컴퓨터통신에 바친다.

일기도 종이에 적기보다는 전자일기장에 기록하고, 뭔가 사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싶을때는 토론실 게시판에 자기 의견을 올린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을때는 채팅을 한다.

맘에 맞는 상대를 만나면 밤을 새우는 일도 흔하다.

본인도 "매일 보는 회사사람이나 친구들보다도 통신에서 만난 사람이
더 재미있을 때가 많아요"라고 당당히 말한다.

그는 가끔 자신이 컴퓨터중독증에 걸린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크게 심각하게 여기진 않는다.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데서 오는 일시적 현상이 아닐까"라고 스스로를
진단한다.

정씨의 이야기는 일부 마니아들에게만 해당하는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다.

특히 대학생과 젊은 직장인들에게 컴퓨터는 단순한 사무기기가 아니라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다.

제일기획이 20~29세 PC통신 가입자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적으로 제일 먼저 컴퓨터를 켠다"는 사람이 42%,
"잠들기 전인 저녁 10시부터 새벽1시사이에 컴퓨터 통신을 한다"는 사람이
57%로 나타났다.

절반이상이 하루의 시작과 끝을 컴퓨터와 함께하는 셈이다.

TV나 신문을 보는 시간보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시간이 더 많다는 대답도
64%에 달해 신세대 네티즌들은 컴퓨터에 대해 기존의 대중매체를 능가하는
친밀도를 갖고 있음을 알수 있다.

심지어 가족과 대화하는 것보다 컴퓨터통신을 하는 것이 더 좋다는 사람도
100명중 60명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컴퓨터가 겉으로 보듯 개인적 고립만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사이버세계를 넘나드는 이들은 나이와 국적에 상관없이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는 신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래픽디자이너 심은희씨(25.여)는 컴퓨터의 최대 매력은 다양한 인간관계
를 맺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꼽는다.

대학시절부터 채팅광이었던 그녀는 개인 ID와 E-메일주소를 교환한 사이버
프렌드만 수십명에 달한다.

"회사사람이나 친구보다 컴퓨터통신을 통해서 만난사람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게다가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말못할 고민이나 생각도 스스럼없이
털어놓을 수 있어 좋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인터넷 이용인구가 늘면서 사이버미팅의 대상도 전세계로 확대되고 있다.

제일기획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현재 인터넷을 통해 만나는 외국친구가
있다는 대답은 10명중 2명꼴로 아직 적은 편이지만 대부분의 네티즌들이
"앞으로 사귈 계획을 갖고 있다"고 대답했다.

신세대들은 컴퓨터를 통해 인간관계를 넓힐뿐 아니라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
을 길러가고 여론을 형성한다.

100명중 76명이 컴퓨터통신을 시작한 이후 사회적 관심이 많아졌다고
말했고 74명이 컴퓨터통신에 자신의 의견을 자주 올린다고 밝혔다.

신세대들은 PC통신을 대중의 의견을 듣고 비판하고 또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여론광장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 권수경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6일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