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는 또 하나의 기억"

한국예술종합학교 이강숙교장(60)은 컴퓨터를 이렇게 부른다.

그는 업무중에도 개인생활에도 컴퓨터없인 아무일도 할수 없다는 컴퓨터
마니아다.

그렇다고 많은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다루는 "테크니션"은 결코 아니다.

놀랍게도 이교장은 컴퓨터를 배운지 10년이 다 돼 가지만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한글워드프로세서 뿐이다.

"각종 게임부터 인터넷까지 모두 있지만 사용할 시간도 없고 따로 배울
시간이 없었죠"

이교장은 모든 일과와 업무 개인일정 등을 모두 한글파일로 하나씩 정리해
놓고 있다.

중요인물을 만날땐 미리 질문내용을 워드로 정리하고 인터뷰할때 즉석
정리도 한다.

그만큼 워드엔 자신이 있다.

그는 워드로 일을 정리하고 처리하는 것이 너무 편하고 자연스럽다고 한다.

그래서 집무실에는 3.5인치디스크가 책장 한칸을 빼곡이 채우고 있다.

"기억의 일부"인 이 파일들을 이교장은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이교장과 컴퓨터와의 만남은 지난 87년 이어령전문화부장관과의 미국
여행중이었다.

당시 올림픽개최위원으로 미국체육행사를 견학하러 가던 비행기안에서
그는 동료교수였던 이전장관이 다목적용시계를 손목에 차고 있는 것을
보았다.

시간도 나오지만 전화번호메모도 할 수 있고 계산도 할 수 있는 평범한
다목적용 시계였다.

그러나 수첩과 펜만을 사용하던 그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이전장관은 컴퓨터를 배워야하는 확실한 동기를 부여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컴퓨터를 써보라고. 정말 편하고 빠르며 정확하지"

그때부터 관심을 갖고 배운 컴퓨터는 이교장에게 많은 제자들을 만들어
주었다.

그의 수제자중엔 현재 오하이오주립대학에서 시각디자인조교수에 재직중인
맏딸 윤수씨(31)와 큰아들 석재씨(29), 서울대 4년에 재학중인 인재씨(27)
등 3자녀와 아내인 문희자씨도 있다.

컴퓨터제자인 자녀들은 이제 컴퓨터를 전공할만큼 이 부문의 전문가가
되었다.

"가히 청출어람이라고 이를 만하다"며 이교장은 흐뭇해한다.

그는 자신이 설립부터 챙긴 예술종합학교에 대한 사랑이 유별나다.

자랑도 특이했다.

그는 "고3학생들 사이에 우리학교를 입학하는 것이 "입신"의 경지에 오르는
것만큼 힘들다는 얘기가 돌고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아직도 일할 의욕과 체력이 충분하다며 이교장은 "외국인들도 유학 오고
싶어하는 명실공히 전문예술학교로 키워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히고 "그러기
위해선 컴퓨터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컴퓨터 애찬론을 폈다.

< 박수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