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에게 8.15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36년간 일제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일 것이다.

특히 8.15해방 직후 초.중.고교 교육은 어느 과목을 막론하고 일제
식민지 탄압에 대한 민족적인 울분이었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오늘의
기성세대들은 그때의 민족사관으로 오늘의 일본을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21세기도 그러한 맥락에서 전망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길고도 암울했던 일제 식민지 기간보다도 더 긴
해방후 반세기를 넘기고 있다.

남.북한을 막론하고 7,000만 민족이 일제의 핍박을 망각할 수 없지만
그것을 원한으로서가 아니라 민족사의 전진을 앞당기려는 소명의식으로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

이렇게 각오할 때 우리는 해방후 반세기 동안 과연 무엇을 했는지
다시 한번 다짐해 보면서 또 새로운 반세기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올림픽 100주년을 기념하는 역사적인 제26회 애틀랜타 올림픽
대회에서 197개국 중에서 종합10위를 차지함으로써 4회 연속 10위권에
오르는 스포츠 강국의 자리를 과시하였다.

모든 면에서 우리의 숙적이었던 일본이 23위에 그친 것을 생각할
때 이는 통쾌하기까지 한 민족적인 자존심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스포츠만의 대일 승리로 우리 스스로를 위로해서는
안될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곧 21세기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에 20세기 전반기의
식민지시대와 여기서 비롯된 후반기의 분단조국의 어두운 100년사를
청산하기 위해서 새로운 역사 창조의 국민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21세기는 국제적인 스포츠 축제만으로 출발하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즉 97년의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와 98년의 부산 아시안게임,
그리고 2000년의 시드니 올림픽 준비와 2002년 월드컵 개최 등 세계
적인 스포츠 행사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스포츠 축제가 세계적인 행사인 만큼 그 준비에는 엄청난
시설투자가 필요한데 이는 전부 비생산적인 투자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현재의 우리의 국력과 경쟁력으로 그러한 시설 투자를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될 뿐만 아니라 그 후유증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우리의 산업구조는 1차산업이 6%이며 2차산업은 26%, 그리고
3차산업은 68%로서 그 고도화가 상당한 수준에 달하고 있다.

그런데 서비스 산업인 3차산업의 비중이 70% 수준을 넘어서면 탈
공업화 현상, 즉 산업공동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외국기업의 국내투자는 감소하는 반면에 오히려 국내
기업의 국외투자가 증가하는 국내기업의 외국 탈출 현상이 심해지는
것이다.

실제로 작년의 외국기업의 국내투자가 19억달러에 그친 반면에 국내
기업의 국외투자는 47억달러에 달하는 우리의 산업공동화 현상이 심화
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러한 산업공동화의 요인을 보면 고임금이 65%, 원자재 가격
상승이 18%, 물류비용 과다가 7%, 높은 금융비용이 5%, 기타가 5%
순위로 나타나 우리의 가격 경쟁력이 점차 떨어지고 있기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자대책을 세우기보다도
국제적인 스포츠 축제행사에 국운을 걸고 있는 것같은 인상을 준다면
대망의 21세기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2002년의 월드컵 축구행사는 일본과 공동으로 개최하기
때문에 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공동개최의 부담이나 축구시합의 승패에 대한 부담이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한 부담이 걱정스럽다는 것이다.

스포츠는 우리가 일본보다 선진국이기 때문에 월드컵의 행사나 축구
실력은 우리가 일본보다 우수할 것이다.

다만 그 행사에 따른 경제적인 이득이나 국위선양에 있어서 일본에
뒤떨어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따라서 이같은 엄청난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국민이 선진국적인 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며 다음으로는
그 스포츠 행사가 이제 겨우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린 우리의 경제력을
후퇴시키지 않도록 철저한 사전준비와 아울러 경제력 배양에 투자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각종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를 계속 개최함에 따른 산업
구조의 조로화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알차고도 경제적인 스포츠
행사를 치러야 할 것이다.

우리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하는 선진국이 되면서도
주식인 쌀까지 수입하는 농촌경제의 실정과 국내기업의 해외 탈출에
따른 산업공동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각종 스포츠 시설의 확충으로
3차산업만이 이상 비대하는 21세기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즉 산업공동화 현상만을 촉진시키는 국제 스포츠 행사가 계속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따라서 21세기의 문턱에서 계속되는 우리의 국제 스포츠 행사는
그 직접투자를 최소화하고 가능한한 국민생활의 불편을 해결하고
수출상품의 국제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사회간접자본 시설을 확충함
으로써 일석이조의 스포츠 시설 투자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국민의 따뜻한 마음과 우리의 문화를 알리는
차원 높은 문화적인 국제 스포츠 축제를 벌여나가야 할 것이다.

월드컵 축구행사를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개최하고도 관광객이
일본으로 몰리고 일제 상품만 사가는 그러한 행사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오늘의 대일 무역역조와
기술 의존도부터 낮추기 위한 철저한 국민적인 노력이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21세기에 가서는 우리에게 8.15가 일본의 식민지 통치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일로 의식되기보다는 일본을 능가하는 기념일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20세기의 마지막 몇년을 철저하게 준비하고 노력
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