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는 ''자본주의 꽃''으로 불린다.

소비자에게 상품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광고의 존재이유이다.

산업혁명을 겪은 선진국에서 일찍부터 광고가 발달한 반면 국내에서는
지난 70년대 들어서야 광고가 독립된 산업으로 대접받기 시작했다.

오리콤 제일기획 등 광고대행사들이 설립되면서부터이다.

김석연 선연회장(62)은 1세대 광고인이다.

광고업이 ''간판쟁이''고 치부되던 초창기에서부터 세계 10위권의
광고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 한국광고의 역사를 지켜왔다.

71년 합동통신 광고기획실 부국장으로 광고와 인연을 맺은 뒤 79년
오리콤이 설립된후 10여년동안 사장으로 근무했다.

90년에는 독립광고대행사인 선연을 설립해 새로운 광고인생을 살고
있다.

올해에는 아시아인으로선 처음으로 국제광고협회(IAA) 회장으로
취임했다.

''국내 광고도 이제는 양적인 경쟁에서 벗어나 질적인 도약을 할 때''
라고 일갈을 서슴지 않는 김회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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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김시행 유통부장 ]]]

-서울대학에서 미학을,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선 문화인류학을
전공하셨습니다.

광고인으로선 독특한 경력이군요.

"광고란 직업이 "창의성"을 가장 중요시합니다.

문화인류학은 서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하는지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광고가 커뮤니케이션의 미학임을 생각할 때 오히려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광고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습니까.

"프랑스에서 귀국한 뒤 현대문화진흥공사란 곳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을 때입니다.

개인적으로 광고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합동통신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당시 사장이 외무부장관을 역임한 이원경씨였는데 광고기획실을
만들테니 책임자로 일해달라는 제의를 받았지요.

37세에 부국장이란 명함을 들고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광고란 직업이 생소했을 텐데요.

"광고대행사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신문이나 TV에 광고를 실으면 됐지 에이전시(대행사)가 왜 필요하느냐는
거지요.

광고대행사라는게 광고영업에 대한 수수료를 받아 먹고 사는데 아무도
커미션을 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광고업이 새로운 산업임을 이해하지 못했던 겁니다.

합동통신이 두산그룹 계열사였는데도 그룹의 광고물량을 따내기가
힘들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초기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모체인 합동통신이 언론사여서 그랬는지 동아일보 중앙일보 동양방송
(TBC) 등 타언론사에서 대행권을 인정해주고 대한석유공사(현 유공)
동서식품 코카콜라 등 외국계 합작기업들이 광고물량을 주면서 자리가
잡혀갔습니다.

당시 맥스웰하우스커피의 런칭광고를 담당한 기억이 납니다"

-일할 사람 구하기도 쉽지 않았겠네요.

"합동통신에 근무하던 기자 등 몇몇을 차출했습니다만 업무가 안됐지요.

기자의 생리와 광고인의 생리가 어디 같습니까.

할 수 없이 고려대 김동기교수, 연세대 유붕노교수 등 마케팅전공
교수들에게 졸업생을 보내달라고 부탁했지요.

오리콤의 민병수사장 엄하용상무 등이 당시 들어왔던 1기생입니다.

까마득한 옛일처럼 여겨집니다만 불과 20여년 전입니다"

-올해 세계광고대회가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그만큼 국내 광고산업의 위상이 높아진 셈입니다.

서울대회의 성과를 평가하신다면.

"한마디로 서울대회는 대단한 성공을 거뒀습니다.

서울대회에 참석한 외국광고인 모두가 한국의 광고산업이 놀랍게
발전했다는 찬사를 보냈습니다.

지난해 국내 광고시장 규모가 5조원에 달했는데 세계 10위권,
아시아에선 일본에 이어 2위권이지요.

서울대회의 개최는 국내 광고산업의 양적인 성장 못지않게 광고표현의
자율성, 국민들의 의식 등 광고산업을 둘러싼 환경이 발전했음을
세계가 인정했다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김회장께서는 아시아인으로선 처음으로 국제광고협회(IAA) 회장으로
피선됐습니다.

앞으로의 활동을 소개해 주시지요.

"회장의 임기는 2년입니다만 그전에 수석 부회장으로서 2년, 임기후
전임회장으로서 2년 등 실질적으로 모두 6년을 봉사하게 됩니다.

국제광고협회의 취지인 광고인 양성과 광고자유의 증진에 힘쓸
계획입니다"


-지난해 국내 광고시장이 완전 개방됐습니다.

이미 오길비&마더 보젤 베이츠월드와이드 레오버넷 등 20여개 다국적
광고사들이 국내에 진출했습니다.

이들과 비교할 때 국내 광고사들의 경쟁력은 어떤 수준입니까.

"우리나라 광고산업은 아직 역사가 일천합니다.

어느정도 다국적광고사들과 겨룰 수 있는 대응체제는 갖췄다고 봅니다만
크리에이티브 등 질적인 측면에선 떨어지는게 사실이지요"

-시장규모에 비해 질적인 발전이 더딘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우선 광고효과에 대한 과학적인 데이터가 축적되지 않은게 문제입니다.

국내 광고시장이 5조원 규모인데도 이 돈이 합리적으로 쓰여지고
있는지 계량적인 측정방법이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광고주들의 마케팅마인드도 아직 부족합니다.

소비자와의 동반관계에서 제품을 개발하고 기업을 발전시킨다는
인식이 없습니다.

제품개발에는 큰 돈을 쓰면서 왜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에는 인색한
것입니까"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건을 만들어 놓으면 팔린다는 생각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겁니다.

빈곤했던 시절의 습성이 남아 있는 거지요.

물자가 풍부해진 현대사회에서는 소비자의 선택권이 중요해집니다.

광고란 바로 소비자의 올바른 선택을 위해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광고업계 내부의 문제는 없습니까.

"대기업광고주들이 계열광고회사를 차려서 이들에게 광고물량을
몰아주는 하우스에이전시체제가 빨리 없어져야 합니다.

이 체제에서는 실력보다는 연고권이 우선됩니다.

진정한 의미의 자유경쟁 공정경쟁이 안되는데 무슨 질적인 발전이
가능하겠습니까"

-김회장께서도 오리콤사장을 10여년간 역임한 하우스에이전시 출신
이잖습니까.

"오리콤사장으로 근무할 때부터 탈계열광고사를 시도했습니다.

당시 매출액의 12%만 계열사 물량이었지 나머지는 타그룹 광고였습니다.

하우스에이전시로는 발전이 안됩니다"

-재작년 삼성그룹이 광고개방선언을 한 후 이른바 "계열광고 파괴현상"
이 일어나고 있는데.

"아직까지 1~2개 프로젝트에 그치고 있습니다.

계열광고관행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니 몇 품목은 개방해 보자는 식으론
안되지요.

오히려 최근 광고시장은 대그룹 계열광고사들이 중소광고주의 물량까지
휩쓸어가는 무한경쟁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나친 힘의 경쟁으로 크리에이티브가 아니라 이권에 따라 광고를
주고받는 시대로 타락했습니다.

건전한 경제 뒤에는 건전한 광고거래가 있습니다.

좋은 광고가 성공하는 세상이 진정한 자유경쟁시대라고 할 수 있지요"

-좋은 광고란 어떤 것입니까.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주면서도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것입니다.

인생은 얼마나 일상적입니까.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날 광고를 보고나서 "아 그게
그래서 좋았던 거구나"라고 깨달음을 주는 것, 그게 좋은 광고입니다"

-방송광고공사가 방송사들의 광고영업을 대행하는 현 체제에 불만들이
많은데 외국에도 이러한 사례가 있습니까.

"이탈리아에도 비슷한게 있습니다만 공사같은 독과점구조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현재처럼 자본의 지배논리하에서 미디어들이 무한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선 순기능도 많다고 봅니다.

공사가 없을 경우 방송사들이 광고수입을 늘리기 위해 선정성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많지요"

-멀티미디어시대의 도래 등 세상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미래에 대해 광고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광고계 내부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보다는 새로운 세대가 변혁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80년대 후반부터 우수한 인력이 광고업에 몰리고 있습니다.

미국대학의 광고학과를 보아도 한국유학생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전공분야도 마케팅은 물론 디자인이나 제작 등 실무분야로 넓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미래를 걸고 있습니다"

-광고인으로 한평생을 보내셨는데 후회는 없습니까.

"없습니다.

저는 광고가 독립적인 산업분야임을 인식시키는데 한평생을 보냈습니다만
새로운 21세기에는 광고의 중요성이 매우 커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후배산업사회로 넘어갈수록 광고인이 대접받는 사회가 됩니다"

-1세대 광고인으로서 후학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은데요.

"적당주의를 배격하고 철저한 직업의식을 가져달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에 흥미를 갖고 눈을 떠야 합니다.

끊임없이 탐구하는 자세-그것이 결국은 창의성의 원동력이 됩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