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 <한국경제연구원 산업실장>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입법예고되었다.

일반적인 다른 입법의 경우처럼 판에 박힌 토론회를 거친 다음 입법자의
원래 의도대로 통과되게 될 것이다.

이번의 입법예고안 가운데 몇가지의 핵심 조치들은 중대한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입법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가진 굳은 신념 즉, 경제력집중을
막아야 한다는 신조가 존재하는 한이번 안이 개정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여러 조치 가운데서도 계열기업 사이에 이루어지는
빚보증을 완전히 없애려는 제도 개성과 계열 기업군내 금융 및 보험회사의
의결권을 제한하려는 제도의 신설은 기본적으로 위헌적인 법령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미 특수 관계인에 대한 조항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친족독립
경영회사"라는 희귀한 용어로 만들면서까지 차별적인 입법을 추가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공정위는 계열기업 사이에 이루어지는 빗보증을 향후 5년간 완전히
없애려는 의욕적인 입법의도를 밝히고 있다.

상호지급보증이란 추가적인 자원을 사용하지 않더라고 기업들이 신용을
창출해 내는 메커니즘에 해당한다.

이것은 기업들이 신용이라는 재산권을 활용하여 거래당사자들인 기업들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까지 혜택을 누릴수 있는 관행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같은 재산권의 활용을 금지하는 것을 공정위가 헌법상 보장될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 헌법에서 재산권 행사가 무한정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나 법인의 재산권 행사가 사회적으로 미치는 피해가 막대할 경우에
공권력은 재산권 행사를 제한 할 수 있다.

과연 상호지급보증이란 관행의 사회적 비용은 어느 정도인가 공정위는
상호지급보증이 재벌들에 의한 금융자원의 독식을 가져옴으로써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주장이다.

필자는 공정위의 주장의 타당성을 평가해 보았다.

우선 예금은행의 총원화 대출금 기준 자료를 중심으로 보면 중소기업이
정하는 비중은 지난 90년 이래로 안정세를 누리면 오히려 점점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총대출금 가운데 300인 이하의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94년 58.8% 95년 90.6% 96년 3월말 61.0%를 차지하고 있다.

30대 재벌이 금융자금을 독식하고 있다는 공정위의 주장은 그야말로
허무맹랑한 이야기라 아니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30대 기업집단이 국민경제에서 만들어내는 산출물인
부가가치를 보더라도 그 투입요소인 금융자원과 적정한 비율을 기록하고
있다.

예를 들면 30대 재벌이 지난 93년과 94년도 동안 만들어 낸 부가가치의
비중은 산업총생산을 기준으로16%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대응이라도 하듯 30대재벌의 은행대출 비율은 91년의 19.5%에서
94년과 95년에는 각각 14.9%와 13.9%까지 하락하고 있다.

이미 한국과 재별들은 부가가치의 창출에 걸맞는 금융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공정위가 내세우는 금융자금의 독식과 이로인한 경제력집중의 심화라는
논리는 타당하지 않다.

한편 공정위는 부실기업의 도산으로 인한 연쇄부도의 원흉으로
상호지급보증을 들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경제정책을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서 만들어져서는 안된다.

어떤 경제정책이라도 기대수익과 기대비용을 냉정하게 비교해서
만들어져야 한다.

가끔 발생하는 부도를 막기위해서 상호지급보증을 완전히 철폐하지는
주장은 마치 "빈대를 잡기위해서 초가삼간을 태우자"는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다.

이에 반해 상호지급보증의 신용 창조 기능이 가져오는 기대수익은
개별기업 뿐만 아니라 한국경제에도 큰 역할을 할수 있다.

다음으로 공정위는 계열회사인 보험사나 금융회사가 가진 계열회사인
보험사나 금융회사가 가진 계열회사의 의결권을 제한하려고 한다.

주식소유는 책임과 권한이 따르는 일이다.

주주의 의결권은 주주가 가진 권리 즉 주주권 가운데 공익권에 해당한다.

때문에 일종의 재산권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재산권 행사를 부당하게 제한하는 것은 상호지급보증에서와
마찬가지로 위헌적인 법령임에 틀림이 없다.

이미 경제력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성급하게 만들어진 공정거래법상의
많은 조항들 즉, 지주회사 금지, 기업집단 지정방식, 상호출자 제한,
출자총액 제한의 위헌성이 이미 학계에서 거론되고 있다.

무릇 모든 법은 개정이나 신설이 가져올 편익과 비용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

그리고 헌법이나 상위법의 저축 여부를 엄격하게 따져서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지난날의 개발연대가 아니다.

입법은 철저하게 법치주의라는 대원칙을 지켜나가야 한다.

팽배한 국민정서나 고정화된 신념에 의거해서 위헌법령을 양산해서는
안된다.

이번 입법예고안을 보면서 공정위의 법률만능주의와 행정편의주의를
진정으로 우려치 않을 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