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진 <경북대 교수 / 경영학>

사자가 정글의 왕이 되도록 어미사자는 새끼사자를 심지어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뜨리기도 한다고 한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분명한 교훈은 우리에 가두어 놓고 아무리 간섭도
안하고 자율을 준다 할지라도 그 사자는 정글에서 생존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는 사실과 정글에도 정글의 법칙과 섭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최근의 금융산업정책의 방향이 민간의 자율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점에서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금융의 개방화에 따라 생존경쟁의 정글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좁은 우리를 만들어 놓고 있지는 않는지.

그렇다면 자율이란 이름 아래 흘끗흘끗 조련사를 쳐다보아야 하는 갇힌
사자의 꼴은 아닌지.

증권관련 제도개편 제2탄은 행정.감독체계 등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 나라의 증권감독 규제체계는 미국식과 일본식이 혼합되어 재정경제원
장관, 증권관리위원회(증관위), 증권감독원 등으로 나누어져 서로 위상이
애매하고 권한관계가 분명치 않다.

특히 최고의 심의 의결기구로서의 증관위가 증관위의 사무기구에
해당하는 증권감독원내에 설치되어 있고 증관위 위원장이 증권감독원
원장을 겸임하고 있어 조직체계부터가 모순적이고 기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증권감독원이 지난 7월24일 정기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모두 26차례의 증관위 회의가 열려 255건의 안건을 처리하였으나
모두 원안대로 가결되었으며 심지어 반대의사를 표시한 위원이 그동안
단 한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증관위의 당연직 위원으로 되어 있는 제정경제원
차관은 회의에 아예 참석하지도 않게 되고 증관위는 통과의례에 불과한
거수기 내지 허수아비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증관위의 유명무실론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어서 이번 2차
증권제도개선안에서도 증관위의 위상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전해지는 검토안에는 얼핏 실망스러운 점들도 눈에 띄는
것 같다.

예컨대 증권업협회 증권거래소 등을 증권감독원 산하에 두는 방안은
증관위의 실질적인 위상강화, 자율규제의 강화, 감독의 효율설 등의
측면에서 의문이 제기된다.

또한 유력한 절충안으로서 재정경제원 장관이 증관위 위원장을 겸임한다는
방안도 그렇잖아도 경제기획원과의 통합으로 비대해져 경제정책조정 등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이 일고 있는 처지에서 증관위
위원장의 업무가 부수업무로 절락할 소지가 다분해 실효성이 의문시 된다고
하겠다.

증권거래법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공정한 거래와 건전한 자본시장의
육성을 위해서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감독기구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문제해결을 위해 먼저 감독규제에 관한 원칙과 기준을 설정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공정한 게임의 룰을 정하고 참여자들의 공정성 여부를 감독
감시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정부의 고유기능이다.

둘째 금융업은 특성상 외부효과가 지대하므로 금융시스템의 안전성과
건전성을 보호하고 금융시장의 실패를 방지하기 위하여 정부의 규제와
감독은 불가피하다.

셋째 금융회사는 총자본의 대부분이 타인의 돈일 수밖에 없어,설립과
운영 및 도산처리에 있어서 여타 산업과는 달리 엄격한 기준과 절차가
요구된다.

넷째 금융의 겸업화 추세로 금융부문간 경계가 불투명해지고 우리의
조직문화가 비탄력적이므로 가급적 감독기관의 일원화가 요망된다.

다섯째 신상품개발과 창의,그리고 금융시장과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과다한 규제가 되어서는 안된다.

여섯째 운영의 효율을 위하여 감독 규제 권한을 협회 등에 적절히
이양하여 자율규제를 활성화하도록 한다.

일곱째 환율과 금리의 불안이 증대됨에 따라 금융시장과 시스템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위하여 공정거래 감시와 금융감독 명료화가 요구된다.

끝으로 금융시장이 세계적으로 통합화되고 있어 국가간 협력감독체제의
구축과 규제 감독의 표준화를 지향한다.

차제에 이상과 같은 원칙과 기준 아래서 과거와 현재를 염두에는 두되,
미래를 위하여 백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자세로 기존의 틀을 깰 수 있는
사명감으로 금융 감독 규제체계가 투자자 보호와 시장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마련되어야 하겠다.

이제는 증권을 비롯한 금융산업이 좁은 우리속의 보호에서 안주하기보다는
개방된 넓은 정글에서 공정한 시장경제의 법칙 아래서 강인한 생존력과
경쟁력을 갖추어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은 시장과 산업의 발전이 아무 것도 없던 초기와는 달리 산업
그 자체의 보호가 아닌 소비자, 즉 투자자의 보호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니며 선진국의 문턱을 넘보고 있지
않는가.

그만한 자신감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증권 규제 감독체계를 새롭게 짜고 있는 관계자들의 땀이 젖어 있을 멋진
결과를 기대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