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경제인연합회 주최 최고경영자 하계세미나가 17일부터 4일간
일정으로 제주 하얏트호텔에서 열리고 있다.

다음은 18일 세미나에서 이회창 전국무총리(국회의원)가 발표한
"미래를 향한 우리의 선택"이란 주제의 강연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 임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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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0년대 우리국민은 "보리고개"에서 일어섰다.

"잘 살아 보자"는 비전 아래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열심히 일했다.

그 결과 1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던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섰고 무역규모로 세계 10위권 국가가 됐으며 원조수혜국에서
원조공여국으로 발돋움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기업인들로부터 "기업할 마음이 안 난다"라는
하소연을 자주 듣게 됐다.

"선진국의 두배가 넘는 금융비용에 국제적으로도 높은 수준이 된
노동비용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공장용지가격을 도저히
감당해 낼 수가 없다.

그 뿐 아니라 각종 불합리한 행정규제에다 엄청난 물류비용에 발목
잡혀서 더 이상 버텨내기 어렵다"는게 요지인 것 같다.

나라 안 여건뿐만 아니라 바깥환경도 어렵게 돌아가고 있다.

세계는 지금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 하에서 자국의 경제이해를 최우선으로
하는 경제 제일주의시대 무한경쟁시대에 돌입했다.

세계 선진국 정상들은 저마다 비즈니스 외교에 주력하고 있다.

독일의 콜 총리와 이미 고인이 된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이 경부고속철도
수주를 위해 서울을 경쟁하듯 다녀가던 모습을 우리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같이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G7도 살아남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는데 우리 현실은 어떤가.

몇 가지 우려되는 대목이 있다.

첫째 우리 국민들이 "경제하려는 의지"가 실종된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자본주의는 본래 자기 직업에 모든 힘을 다하여 종사하는 직업정신
그리고 낭비없는 검소한 생활윤리의 바탕 위에 발전해 왔다.

한국경제의 발전도 그러한 직업정신과 검약윤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작금의 우리 산업현장은 매우 안타깝다.

우리의 산업현장은 아직도 해마다 재연되는 대립적 노사분규로 큰
홍역을 앓고 있다.

대립적 노사분규가 반복되는 가운데 노는 노대로 근로의지에 상처받고,
사 또한 사대로 경영의지에 상처받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산업현장에 "경제하려는 의지"가 시들어 가고 있는
것이 실로 걱정된다.

거기에다 일부 국민들의 사치성 소비와 부분별한 해외여행도 큰
걱정이 아닐수 없다.

두 번째로 기업에 대해 또 부의 축적에 대해 우리가 아직도 덜
성숙한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과거 한때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기업이 부를 축적하는
떳떳치 못한 관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떳떳치 못한 "정경유착" 관행이 발붙이기 어렵게 됐고 검은 돈의
흐름을 차단하기 위한 금융실명제도 정착돼 가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 사회 일각에는 기업 특히 대기업이라면 일단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는 우리나라의 건전한 자본주의 발전을 위해 하루빨리 불식 돼야
할 편협한 시각이 아닐수 없다.

셋째로 우리나라 경제운용의 틀은 아직도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개발연대 동안 우리나라는 정부가 경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압축 고도 성장에 성공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었다.

이제 정치가 경제를 관리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그러기엔 우리경제의 몸집이 너무도 커졌고 국제 경제환경도 더
이상 이를 용납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넷째로 다가오는 정보화 시대에 대비한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걱정이 된다.

세계는 지금 정보.통신기술이 주도하는 이른바 "제3차 산업혁명"을
겪고 있고 우리사회는 산업화 단계에서 정보화 단계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집단효율보다는 개성이 존중되며, 업무의 능률보다는
창의가, 하드웨어 보다는 소프트웨어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것들을
운용하는 인간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21세기 정보화 사회는 여러가지 문제들에 직면하게 될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인구 노령화와 고용은 특히 주목해야 할 문제다.

그러면 오늘의 문제와 내일의 변혁에 대비해 우리 경제운용의 기조를
도대체 어떻게 가져 가야 할 것인가.

첫째로 "경제하려는 의지"가 한시바삐 복원돼야 하겠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정신이 굳건히 다져져야 하며
시장 경제 원리가 제대로 지켜져야 한다.

나아가 지금과같이 대립적 노사 관계가 산업현장을 지배하는 한
"경제하려는 의지"의 복원은 기대할 수 없다.

근로자나 경영자 모두 "생산성 향상에 바탕을 둔 근로자 권익신장"이라는
기본원칙을 보다 충실히 지켜가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는 아직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근로하려는 의지"를 북돋아 줄 수 있고, 노는 노대로 경영자들에게
"경영하려는 의지"를 북돋아 줄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정부도 노동정책을 보다 일관성있게 추진함으로써 노와 사의 "경제하려는
의지"복원에 필요한 바깥 환경 조성에 만전을 기해 주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사회적으로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확립이 절실한
시점이다.

기업은 경제를 이끌어가는 주역 중의 주역이며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고 있다.

기업이 생산 교환 분배 그리고 창조의 주체로서 제 할 일을 다할
때 비로소 자본주의가 꽃 피울 수 있는 까닭이다.

많이 번 만큼 세금을 많이 내고, 많이 재투자하여 고용을 많이 창출하는
기업의 사회적 공헌에 대해 우리는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의 꽃"인 기업을 활짝 피우게 하는 것은 기업경영인 여러분의
두 어깨에 달려 있다.

과거에는 정부가 앞에 서서 경제를 이끌어 왔으나 이제는 기업인들이
기업경영을 통해 국가 발전을 주도해 가는 시대가 됐다.

셋째로 시대의 변화에 부응해 정치와 경제와의 관계, 정부의 역할과
기능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시장경제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정부는
간섭을 최소화하고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임무를 맡아야 한다.

기업은 본질적으로 정부보다 효율적인 조직이다.

정부와 달리 책임소재가 분명한 체계를 갖고 있으며 행위 하나하나가
기업 이익과 직결되기에 정부보다 더 진지하게, 더 신중한 분석을
바탕으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해 간다.

이점 특히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도 기업처럼 자신의 고객인 기업과 국민에게 다른나라 정부보다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스스로 변신해 가지 않으면 안된다.

정부가 그같은 변신을 이루려면 그 무엇보다 먼저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 권력이 한 곳에 집중돼 있는 권위주의적 의식구조아래에서는
개인의 자율성이나 창의성, 자유로운 실험정신 등이 꽃필 수 없다.

다음으로 행정체질이 바뀌어야 한다.

정부 생산성을 높일 수 있기 위해서는 "국민과 기업을 고객으로
모시는 기업 마인드를 가진 정부" 조직체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국민과 기업을 고객으로 모시는 정부는 되도록 작은 비용으로 많은
일을 해내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지향한다.

나아가 세계화시대가 요구하는 정부정책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해
가야하겠다.

"정책의 국제경쟁력이 있는 정부"라야 기업의 투자를 우리나라에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같이 기업소유자의 국적에 따라 "우리"기업, "외국"기업으로
나누던 고루한 의식에서 벗어나 우리나라에 투자해 우리 근로자들을
고용하고 우리 정부에 세금을 내고 생산물을 국내외 시장에 공급하여
지역과 국가경제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기업이라면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 고객으로 모셔야 할것이다.

따라서 시장경제를 유지.발전시키기 위해 정치와 정부, 그리고 경제사이에
역할분담이 명확히 돼야 하겠다.

즉 "정경분권화"가 요청되는 것이다.

먼저 정치의 역할은 경제사회의 법과 질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는데 국한돼야 하며 특히 정치가 특정집단이나 지역에 편파적
혜택을 줄 수 있는 이해관계에 관여해서는 안된다.

또 정부의 역할은 공공재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그리고 경제는 자율적 시장에 따라 발전돼야하며 시장의 자율성과
신축성을 제약하는 불합리한 행정규제는 철폐돼야할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정부는 21세기 정보화시대에도 대비해야 한다.

정보화시대는 그 시대가 야기할 문명사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해
갈 수 있는 개성과 창의를 갖춘 인재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정부는 인적자원의 질적 향상에 역점을 둔 교육정책을 강력히
시행해 가야할 것이다.

다른 한편 정보화시대를 조기에 정착시키기 위해 정부는 정보.통신
네트워크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하고 기존 산업사회의 법과 제도를
정보화사회에 맞게 서둘러 정비해가야 한다.

끝으로 언제 닥칠지 모르는 통일에 대한 대비도 소홀히 할수없다.

통일한국은 세계중심에 우뚝 설 위대한 기회를 맞이하게 될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동포들에게 필요한 엄청난 경제 사회적 투자를
감당해 내야하는 어려움에도 직면하게 될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부터 통일에 대비해 북한지역의 자유시장경제화와
정보화에 필요한 제반 여건도 사전에 챙겨두어야 한다.

새로운 역사가 우리의 힘찬 도전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해낼 수 있는 힘과 지혜, 그리고 용기를 갖고 있다.

근로자와 기업인, 정치와 정부가 각기 자기 위치를 바로잡고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해갈때 역사는 우리에게
통일된 선진한국으로 보답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