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주력 상품은 더 이상 돈이 아니라 정보다"

미국 시티은행의 리스턴 전 회장이 남긴 이 명언은 금융계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제조 서비스 등 모든 산업에 똑같이 통용되는 명제다.

뿐 만 아니다.

개인들에게까지도 "정보가 곧 최대.유일의 무기"인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정보를 제압하는 자가 시장을 장악한다.

그래야만 무한 경쟁에서 앞서 달릴 수 있는 시대다.

"정보"를 지구촌 공통의 화두로 자리매김시키고 있는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디지털"과 "멀티미디어"가 그 답이다.

디지털 멀티미디어는 금세기들어 인류사회에 정보화의 신세계를
열어줬던 아날로그 통신의 시대를 빠른 속도로 대체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미디어의 세계와 접목됨에 따라 온갖 정보기기의 통합화를
실현시키고 있다.

전화 TV PC(개인용 컴퓨터)등 종래 각각 따로 놀던 기기들이 디지털의
우산 아래 하나로 뭉치고 있는 것.

이른바 "C&C(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션)의 융합"이다.

바야흐로 세계는 초진분보.지각변동의 초정보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이 초정보화의 시대는 정보기기의 통합화로만 특징지워지지 않는다.

각종 기기의 성능이 고도화.세분화돼 가는 특징도 보여 준다.

컴퓨터 다운사이징에 의한 휴대형 노트북PC의 보편화, 완벽한 이동
통신을 가능케 하는 PCS(개인휴대통신) 등 첨단 정보통신기기의 잇단
개발이 초정보화의 파고를 더욱 높이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VOD(정보주문형 비디오)나 DVD(디지털 비디오 디스크) 등
첨단 디지털 영상기기의 출현으로 인류는 보다 선명한 화면의 동화상
정보를 안방이나 사무실 책상에 편안히 앉아서 검색할 수 있게 됐다.

정보 유통의 시간과 공간적 장벽을 완전히 극복시킨 인터넷 등 정보
소프트웨어 시스템의 출현은 인류가 꿈에서나 그리던 "사이버 스페이스"를
가상이 아닌 현실의 세계로 이끌어내고 있다.

이제는 지구 반대편 거래선과의 업무 협의를 위해 더 이상 바삐 비행기를
타고 수십시간씩 날아갈 필요가 없다.

단말기 하나만 두드리면 지구촌 어디건 원하는 대상과 직접 얼굴을
마주대하는 양 생생한 화면속에서 몇시간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국내 대학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대학원생이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만 있는 도서를 구하기 위해 직접 영국을 방문하거나 장황한
편지를 띄워 도서 대출을 애걸할 필요도 없다.

단말기 하나로 단숨에 원하는 도서의 필요한 부분을 화면에 띄울
수도 있고, 프린터로 출력해서 보관할 수도 있는 세상이다.

서재를 온통 책으로 도배질하다시피 쌓아놓고서도, 정작 필요한 때에
원하는 책이 어디에 꽂혀 있는지를 찾기 위해 허둥지둥할 일도 없게 됐다.

아니, "장서용"을 빼고는 굳이 서재에 책을 잔뜩 모아둘 필요가 없는
세상이다.

신문을 몇년치씩 보관하는 번거로움도 "이젠 안녕"이다.

단말기를 몇차례 조작하는 것 만으로 백과사전도, 몇년전 몇월 며칠자
어느 신문의 몇 페이지에 실린 기사까지도 간단하게 컴퓨터 화면에 띄워
볼 수 있는 시대다.

활짝 열리고 있는 멀티미디어 세상에서는 "컴맹의 비애"도 사라진다.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대신 TV 리모컨을 사용해서
PC통신을 즐기면 된다.

친숙한 TV를 통해 인터넷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멀티미디어 세상이 펼쳐 보이는 요지경 속은 한도 끝도 없다.

무역 결제에서 서류가 필요없게 된 "페이퍼리스(paperless) 무역"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최근에는 컴퓨터와 통신 기능의 결합으로 사무실에 출근할 필요없이
자택에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환경, 이른바 "오피스리스(officeless)
업종"이 등장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PC통신이나 인터넷을 활용함으로써 굳이 시장이나 백화점에 갈 필요없이
안방에 앉아 물건을 고르고 살 수 있는 "스토어리스(storeless) 쇼핑"
시대도 개막되고 있다.

이른바 "리스(less)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진보의 속도가 하도 빨라 "리스"의 행진이 어디까지 계속될
지 가늠키조차 힘든 상태다.

디지털 멀티미디어 혁명을 가능케 하는 기본 인자는 단연 반도체다.

그 반도체 분야에서도 기술 진보의 굉음이 거세지고 있다.

정보화 시대에 새로운 "산업의 쌀"로 자리를 굳힌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단순 D램의 시대에서 갖가지 고도 기능이 첨가된 S램, 플래시 메모리,
EDO D램 등 이름조차 생소한 첨단 제품들이 속속 시장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

정보기기의 휴대화가 진전됨에 따라 전지분야에서도 기술개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기존의 납축전지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고, 그 대신 간단한 조작만으로
충전과 장시간 사용이 가능한 니켈-카드뮴 전지등 2차, 3차 전지가
멀티미디어 세계의 새로운 "젖줄"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처럼 초정보화를 골간으로 하는 멀티미디어 혁명이 끝간 데 없이
이어짐에 따라 "재래" 가전산업계에도 환골탈태에 가까운 변신 몸부림이
치열하다.

제품의 융합화와 성능 및 디자인 개선 등의 노력에 사활을 걸고 있다.

기술과 시장을 찾아 해외 진출 행렬도 가속화하고 있다.

여기에 WTO(세계무역기구)체제의 개막에 따라 그동안 단단히 빗장을
걸어 잠갔던 국내 가전시장을 활짝 열어제치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됐다.

한마디로 변화에 즉응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지 않고는 그 누구도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