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더해가는 인구밀도와 공해로 도시에서 생활하기가 점점
고통스러워지고 있다.

적잖은 사람들이 자녀교육문제와 직장만 아니라면 미련없이 서울을
떠나겠다고들 하지만 정작 망설이는 것은 모든 생활기반이 있는
도시문화권으로부터의 단절감이나 무료한 농촌생활에 대한 심리적
부담때문인 듯하다.

주변의 많은 친지들이 오래전부터 시골에 근거를 두고 사는 나를
부러워하면서도 막상 사흘을 못견디고 돌아가는 걸 보면 자연과 더불어
소요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생각만큼 용이한 일은 아닌
모양이다.

시골행을 못하는 데 대해 아이들을 핑계 삼는 부모들의 경우 자연과
융화되는 힘은 아이들이 더 강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싶다.

그러니 대학진학이 어려운 농촌의 열악한 교육조건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우리 부모들로서는 용기 이상의 모험이 필요한 일인지 모른다.

칠흙같은 어둠을 도깨비불같은 헤드라이트에 의지하는 청평호건너
외딴마을에 정착한 지 십수년.

이른 새벽 청아한 공기속 호수를 가로질러 온 물안개가 창너머로
넘실대고, 휘영청 달 떠오르는 밤 세상사 아우성같은 개구리울음소리를
벗하노라면 산다는 일이 슬프면서도 고즈녁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러나 나 역시 직장과 일이 도회에 있고 흙과 친숙하지 못했던 만큼
시골생활에 익숙해지기까지에는 무던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평생을 들에 바치는 농부들의 고단한 심사를 헤아리지
못하고 경거망동하는 외지인들에 대한 농촌사람들의 뿌리깊은 불신
때문이기도 했고, 편리와 풍요의 이데올로기에 젖은 도시인으로서
전원생활에 대한 환상을 깨트려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아직도 우리의 전통적인 공동체적 삶의 방식을 영위하고 있는 농촌.

그곳으로 진정 회귀하자면 무엇보다 흙과 친숙해질 수 있는 자세를
배워야 한다.

자연이 인간에게 은총을 베푸는 것은 인간이 자연을 소박하게 마주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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