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를 매개로 생활하는 소설가나 작가들 혹은 저술가들은 모자나 교정
미스 때문에 큰 망신을 당하는 수가 있다.

특히 나이나 경력에 오자가 났을때 혹은 이름이 잘못 표기됐을때는 울수도
없는 고통에 사로 잡힌다.

필자가 38세때 어떤 소설의 작가 소개를 읽어보니 당 63세였다.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편집부에 항의했더니 편집기자 "63세는 언젠가
되실터이고 박영희씨의 이름이 박박해로 잘못 나간 것보다는 좀 낳은
편이네요"했다.

잘못을 사과할줄 모르는 인간들이라니.

우리의 정신구조가 잘못을 깨끗이 사과 할줄 모른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지만...

어느해인가 소설원고를 넘기고 외국에 갔다 왔더니 전공은 영문학이고
나이는 10년이 밑이요.

학교 졸업년도까지 엉뚱하게 창작되어 있다.

기가 막혀서 말을 잃고 있는데 나이는 어려 보여서 그렇게 되었고 출생지는
내가 사투리를 많이 써서 였다.

그리고 전공을 한일이 없는 영문학은 또 어떻게 된 것인가 했더니 영어를
유창하게 하시길래였다.

나를 잘아는 이들이 보면 나를 사기꾼이라고 안하겠는가?

공개사과하라고 호통을 쳤더지 그때서야 경력을 써준 페이지와 작가의
사진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사과를 해야지 요리 조리 피하다가 큰코를 다칠 것
같으니까 겨우 실토를 하는 것이다.

필자는 그 소설의 초판이 다 나가는 동안 내내 노심초사했고 그쪽에도
가끔 영문과 출신이란 인사말을 들을 때마다 해명하노라 진땀을 빼다가
이젠 지쳐 버렸다.

설상 가상으로 내 이름이 남의 꽁트 밑에 씌어져서 날 벼락을 맞은 적도
있다.

내가 쓴 수필의 이름은 물론 그 꽁트작가의 이름으로 나왔고 몇십만부를
찍는다는 사보에 실려 있으니 이 기가 막히는 사정은 어디에 하소연을
할까?

그 뿐인가?

한두 센텐스가 아에 빠져버려서 말이 통 안되는 수필이 된적도 있다.

TV를 생 방송할때 이야기인데 현상 당선한 단막극은 해피 엔딩인데 다음
뉴스방송 때문에 극의 뒷부분이 잘리고보니 언해피엔딩이 되어 드라마
같지도 않은 드라마를 쓴 작가가 되어버렸다.

글을 쓰는 것은 팔자소관이라고나 할까.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