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술자리의 안주는 "장관의 말"이었다.

꽤나 의미있는 말들이 오간 것으로 기억된다.

다음은 그 녹음.

"장관의 기자회견 모습을 보노라니까 씁쓸하더군. 너무 위압적이란 느낌도
들고..."

"개인휴대통신인가 뭔가 하는 사업자를 선정할 때 얘긴가. 뭐 자신감이
있어 좋아 보이지 않던가"

"아니지. 바로 그 사업자를 선정하기까지 재계가 벌였던 이전투구를 몰라서
하는 소린가. 어차피 국민과 업계의 관심이 쏠려 있던 문젠데 이왕 저간의
선정과정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자리였다면 보다 분명한 "자세"가 필요했던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더군. 장관직이란 적어도 일국의 정부를 대표하는
자리이지 않나. 얘기인즉 자연인 아무개가 아니란 말이지. 그게 장관이란
자리가 갖는 함축성 아닌가"

"그래도 소신이 있으니까 그정도라도 한것 아닐까. 왜 예전엔 정부가 결정할
자신이 없으니까 "업계가 알아서 하라"고 던져 버린적까지 있지 않나"

"장관의 말도 마찬가지야. 어차피 "어" 다르고 "아" 다르다는 우리네 말
아니던가"

"그러니까 더욱 말을 아꼈어야지. 장관의 말은 곧 정부의 정책 아닌가.
정책이 신뢰를 받으려면 장관의 말에 무게가 실려야 한다는 말일세"

"장관이 너무 과묵하기만 해도 좋은건 아니지 않나"

"말이란 적적소해야 하는 법이야. 옛말에 오이밭에선 신발끈을 고치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선 갓끈을 만지지 말라고 했지만 장관은 특히.."

"하긴 자충수를 둔 면은 나도 인정하네"

"그 정도가 아니야. "도덕성"만 하더라도 그렇지. 결과적으로 신청업체들
간에 비도덕적인 흠집내기와 상호비방전이 난무하는 결과를 빚지 않았나.
뒷말이 무성한 것도 똑같아. 장관이 이 자리에선 이말을, 저 자리에선 저말
을 하니까 공연히 의심만 산 것 아닌가"

"왔다 갔다 한 건 사실이야"

"바로 그게 문제라니까. 그러니까 내락설등 각종 루머가 떠돈 것 아니겠나.
백번 양보해서 정부의 원칙이나 기준도 바뀔 수 있어. 그걸 문제삼자는게
아니야. 원칙이 바뀌었다면 정부를 대표하는 장관은 납득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고 또 그걸 설명해주면 되는 거야. 국민들은 얼마든지 이해하고
얼마든지 납득하네. 하지만 이것은 그런 경우가 아니지 않은가"

"어떤 경운데"

"예를 들어볼까. 고의가 있었다기 보다는 실언 수준인데. 중소기업을
우대한다고 했다가 중소기업 컨소시엄은 우대하지 않는다? 1차 심사를 대폭
강화하겠다고 했다가 면접이 당락을 결정할 수도 있다? 도덕성이 중요한
심사기준이 된다고 했다가 도덕성 평가는 최소한으로 국한하겠다? 컨소시엄
을 우대하겠다고 했다가 대연합 우대 방침은 없다?"

"좀 심하긴 했군"

"심한 정도가 아니지. 단순히 개인휴대통신사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란
얘기야. 이건 철학의 문제야. 국가를 대표해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사람이 결과적으로 허언을 밥먹듯이 한다면 말이 안되지. 당사자도 문제지만
그 밑에서 장관을 보좌하는 사람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니까.
정부의 권위가 추락할까봐 하는 소리야"

"이미 충분히 봉변을 당한 것 아닌가. 왜 중소기협중앙회에서 떠들고
난리가 나지 않았나. 하긴 장관의 말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던데"

"장관의 견해가 옳고 그른 것을 따지자는게 아니라니까 그래. 생각 없는
소리를 해대는게 문제란 말야. 중소기업 컨소시엄에 대한 견해야 누구나
가질 수 있고 또 그것을 어떻게 막을수 있겠나. 요는 시험감독이 시험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저 학생은 자격없다, 떨어질 것이다고 말해선 안된다는 거지"

"듣고 보니 그럴 것도 같구만"

"더 심각한 것은 일반 국민의 정서에는 형법에서 말하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통하지 않는다는 거지. 잡범은 유죄가 증명되지 않으면 무죄가 되지만
세간의 뒷말은 혐의만 있으면 유죄야. 옛말에도 중구삭금, 많은 사람의
입방아가 쇠를 녹인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니 꼭 구린 냄새가 요란하다고
해서 말썽인 것만은 아니야"

"..."

"국민이 나라의 피와 살이라면 글쎄 관리는 그 뼈대 쯤이 되는 것 아닌가.
인체의 골격이 바로 잡혀야 사람의 허우대가 멀쩡하듯이 관리들이 제대로
서야 나라꼴이 번듯해지는 것 아니던가 말이야. 더구나 장관은 관리중의
관리니까 장관이.."

"어쨌든 오늘 안주는 별도로 필요없겠군. 안주값은 굳었네"

"글쎄"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