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재 < 현대자동차 사장 >

요즘 세계 자동차 산업은 구조조정의 열풍에 휩싸여 있다.

그 도화선은 물론 지난 4월 포드자동차의 마쓰다자동차 인수였다.

포드자동차는 미국에서 제2위 자동차 회사이고 마쓰다자동차는 일본
제5위 자동차 회사로서 오래전부터 제휴를 통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었다.

마쓰다자동차는 "기술의 마쓰다"로 불릴 만큼 뛰어난 기술력을 자랑했으나
마케팅 능력의 부족으로 최근 극심한 판매부진을 면치 못하며 적자의 늪에서
허덕였었다.

포드의 마쓰다 인수는 21세기에는 경쟁력을 갖춘 10개의 자동차 회사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공공연한 예측이 단순한 예측이 아닌 현실로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자동차 산업이 이처럼 구조 조정의 열풍에 휩싸이면서 "경쟁력"은 더욱
중요해졌다.

경쟁력은 약육강식의 냉엄한 국제경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생존전략이기 때문이다.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힘"을 말하는 경쟁력은 한두 가지의 지표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닌 모든 역량의 총합이다.

다원화된 사회구성원 개개인의 개성과 특성이 시장에 그대로 반영되는
현대사회는 소품종 대량생산이 아닌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다.

또한 과거와 달리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 위주의 시장이다.

때문에 경쟁력 역시 과거에는 경쟁자에 비해서 단순히 더 좋은 상품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지만, 현대는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필요한 시기에
시장에 내놓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경쟁력이다.

소비자에 의해 시장에서 경쟁력의 순위가 매겨지는 현대사회에서는 뛰어난
품질의 상품을 싸게 만드는 것은 경쟁력의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소비자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원하는지 파악하는 것은 경쟁력의
핵심이다.

그런데, 소비자는 불특정 다수이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일정한 형태나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다.

다만, 각 개인의 특성과 개성에 따른 수없이 많은 기호가 존재하며
그것들을 계량화하여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각 개인의 주관적이고 다양한 기호를 하나의 객관적 자료로 만드는
이 계량화 작업이 잘못되면, 소비자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원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함은 물론 상품의 기획단계에서부터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80년대 미국 시장을 강타하면서 자동차 대국으로 자리잡은 일본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은 다름아닌 세계 최고의 품질의 자동차를 산 가격에 만들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일본 경제가 80년대 후반으 거품에서 벗어나며
자동차산업 역시 불황의 늪에 빠져 들어 경쟁력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경쟁력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여러가지가 있었겠지만,그 중의 하나는
소비자가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원하지 않는 첨단 사양및 부품
개발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하였다는 것이다.

마쓰다 역시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하고도 적자으 늪에서 헤어나지 못해
포드에 합병된 것은 소비자가 원하는 자동차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적용한 상품이라도 시장에서 소비자가 외면하면
그 상품은 상품으로서 가치를 잃어버린 것이며 경쟁력은 최하위를 기록할
수밖에 없다.

상품으 경쟁력은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가 그 상품에 대해 궁극적으로
느끼는 매력도이기 때문이다.

고가의 내구성 소비재이며 단순한 운송수단이 아닌 생명을 담보로 하는
상품인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의 경쟁력은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기술,
품질, 마케팅, A/S, 그리고 회사의 이미지 등의 일반적인 지표에 의해
종합적으로 측정된다.

그러나 각 회사간 기술의 차이가 갈수록 줄어드는 현대사회에서는 자동차의
연구개발, 생산, 판매및 정비등 모든 분야의 모든 과정에서 고객을 최우선에
두는 사고와 경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객 최우선"의 생활하는 고객이 원하는 자동차를 적절한 시기에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고, 고객에 대한 신속하고 정확하며 친절한
봉사를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즉, "고객 최우선"의 생활화는 "경쟁력 기르기"의 생활화이며, 경쟁력은
우리의 미래를 좌우하는 새로운 생활규범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역사는 몇 십년에 불과하다.

짧은 자동차 역사만큼 아직도 우리는 세계 최고는 아니다.

그러나, 자동차 선진국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여 21세기에 세계
최고의 자동차 대국이고자 하는 우리에게 경쟁력 기르기는 아제 더 이상
추상적이고 막연한 이야기가 아닌 우리 생활속의 실천적 문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