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촌의 그레이스백화점은 지난 3월부터 점포이미지를 "신촌지엔느가
찾는 백화점"으로 설정해 눈길을 끌고 있다.

신촌지엔느는 프랑스 파리의 멋쟁이 여성들을 의미하는 파리지엔느에서
따온 말.

지난 93년 그레이스백화점이 창안한 뒤 특정 사회.문화집단을 지칭하는
용어로까지 확대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미씨족"에 이은 두번째
캠페인이다.

그레이스백화점 판촉과 김자경계장은 "백화점이 다른 업태와 차별화될
수 있는 부분은 패션"이라며 "대학문화의 중심지로서 지성과 낭만의
이미지가 강한 신촌의 특성상 고객들에게 새로운 패션의 개념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 넓게는 20~30대의 젊은 여성이 주고객인만큼 이들 또래의
정체성이나 유행을 묶어줄 필요가 있었고 그 돌파구를 "주체성과 가치관이
있는 패션문화"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그레이스백화점은 92년 개점과 함께 "미씨"족을 제안,
신생백화점으로서의 이미지를 크게 높였다.

주부라는 고리타분한 틀에 갇히기에는 감성이 풍부하고 철부지 유행을
좇기에는 너무 성숙해버린 젊은 주부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것이다.

이는 이회사가 자체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10명중 7명이 스스로를
"미씨"라고 생각한데서도 나타난다.

"미씨" "신촌지엔느"등 그레이스백화점이 전개한 일련의 캠페인들은
기업의 판촉전략이 새로운 소비문화를 제안하고 이를 통해 매출을 늘리는
단계로까지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상품을 만들어놓고 소비자들이 사주기를 바라는 "짝사랑"만으로는 경쟁이
안된다.

소비자들을 특정 집단으로 세분화시킨 뒤 같은 집단이라는 동류의식을
심어주고 "이런 물건은 이렇게 소비하는 겁니다"라는 모범답안까지
제시해주어야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여피족 딩크족 X세대등 의미를 알듯 모를듯한 용어의 범람도 뒤에는
상업적인 의도가 깔려있는 경우가 많다.

굳이 "<><>족"이라는 이름을 안붙이더라도 소비계층을 분할해 내려는
시도는 여러 기업에서 눈에 띈다.

태평양이 93년 선보인 트윈엑스는 화장품의 소비층에서 X세대를 별도의
그룹으로 명확히 세분화해 낸 사례로 꼽힌다.

당시 한국사회를 강타했던 "X세대신드롬"에서 새로운 판매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태평양은 이들에게 인기높았던 이병헌과 김원준을 모델로 기용하고
모노톤의 감각적인 광고와 지방순회공연을 펼치며 구매력이 높아진
신세대를 공략해 나갔다.

동방기획 노동호차장은 "트윈엑스는 화장품업계가 연령대별로 제품을
다르게 내는 개별브랜드전략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내 나이 20과 "의 "레쎄"(태평양), "유혹이 아름다운 여자"로 30대를
겨냥한 "헤라"(태평양), "늘 애인같은 아내"로 30~40대 주부층을 끌어들인
"뜨레아"(LG생활건강) 등 화장품의 슬로건들은 이들이 어떤 연령과 소비
집단을 겨냥했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소비자들을 세분화된 집단으로 묶어내는 그룹핑( Grouping )은 젊은
세대를 겨냥한 제품에서 주로 나타난다.

아무래도 이들이 또래의 유행에 민감하고 동류의식도 강하기 때문이다.

"본능세대" 등 타깃이 명확하지 않은 애매모호한 분할마저 시도될
정도다.

소비집단의 그룹핑은 연령 성별 지역별 등 인구통계적인 기준이나
학력 소득수준같은 사회경제적인 지위, 구매행동, 소비자가 상품에서
추구하는 편익 등 다양한 방법에 의해 이뤄진다.

신제품의 시판외에도 이미 성숙기에 들어선 제품의 소비행태를 고급화
또는 개성화시킴으로써 추가수요를 창출할 때도 이방법이 사용된다.

LG애드 마케팅팀 이강원부장은 "소비자 분할이 지나치게 세분화되면
시장이 지나치게 협소해지거나 인접 시장으로의 수요확대가 안되는
단점도 있다"고 지적했다.

< 이영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