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사는 28일 세계경제연구원과 공동으로 세계적 석학인
휴 패트릭교수(콜럼비아대)초청, 호텔롯데 에메랄드룸에서 특별강연회를
열었다.

일본경제 특히 일본 금융부문에 대한 세계적 권위자인 패트릭교수는
"위기에 처한 일본 은행부문-원인과 시사점"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통해
최근 부실채권문제로 곤경에 처한 일본금융산업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함께
제시했다.

패트릭교수는 금융산업의 안정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이를 위해선 투명성과 예금자보호가 수반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일본과 한국의 경우는 금융제도의 특성상 미국과 같이 시장원리에
의한 금융산업의 발전은 어렵다면서 정부주도의 금융산업조정이 보다
효율적이라고 역설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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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금융기관들은 거액의 부실채권으로 인해 심각한 상황에 빠져들어
수지를 맞추는 일뿐만 아니라 업무에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일본의 금융제도는 크게 위축돼 왔다.

문제의 정도와 심각성은 95년부터 올해 3월31일까지의 회계연도동안
21개 주요은행들이 상각처리한 부실채권규모가 1천억달러를 넘는다는
사실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부실채권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변제불능상태에 빠진 주택금융회사인 주센의 처리를 두고
진통이 계속됨에 따라 금융산업의 문제가 정치쟁점화되고 있다.

주센의 부실화에 따른 엄청난 손실액에도 불구, 주센문제가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것은 일본의 금융기관 전반에 걸쳐
투명성의 결여와 손실액을 분산시킬 수 있는 체계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본의 대장성, 주센의 모은행, 농업협동조합의 능력과 책임에
큰 문제가 있음을 반영한다.

또 대장성의 보호막 이외에는 예금자보호문제를 담당할 적절한 부서가
없음을 의미한다.

한편 일본의 정치지도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이같은 문제점들로 인해 정치쟁점화되고 예산안 통과가 늦추어져서라기
보다는 더 근본적으로 예금자보호와 관련된 주센의 문제뿐만 아니라
금융제도의 안전성에 대해 쉬쉬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위기에 처한 일본금융기관을 구제하기 위해선 10여년전
미국의 경우처럼 정부자금이 사용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금융기관 부실채권의 직접적인 원인은 80년대후반 은행 비은행금융
중개기관 일반국민 대장성 모두가 토지가격이 높은 수준이라 하더라도
적어도 상당한 기간동안은 큰 폭의 토지가격 하락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데 있다.

토지는 오랫동안 가장 안전한 담보의 하나였다.

이러한 총체적인 근시안적 발상은 담보로 잡는 토지에 대한 평가를
실질적인 현금흐름, 할부상환평가에 기초하지 않고 토지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예상에 의존함에 따라 부동산에 대한 신용이 크게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90년대초부터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은행등 금융기관들은
채권상환은 물론, 이자도 제대로 지급할 수 없을 만큼 대규모 부실채권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러나 훨씬 더 근원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86년의 엔화절상과 경기침체에 대응한 긴축재정정책과 이상하리만큼
방만했던 통화정책을 혼용한 거시경제정책의 운용이 하나의 실수였다.

낮은 이자율이 실물경제의 팽창을 부채질했을 뿐만 아니라 주식과
부동산가격의 인플레를 가속시켰으며 뒤늦게 통화를 죄었던 89년엔
거품현상이 나타났다.

90년대초반의 통화.재정정책은 전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극복하는데
실패했으며 최근에야 일본경제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대장성과 일본은행이 현재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금융산업의 규제완화를 위해 금융산업의 규제 전망 투명성 등에
관한 효율적 체계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산업 안정화의 핵심은 예금자들이 자신의 예금이 안전하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은행파산과 금융쇼크를 방지해주며 이자율이 급등하고 신용거래가
불가능해지게 될 경우 이러한 금융위기는 곧바로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게
된다.

전후 일본의 강도높은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로 예금자의 안전은 은행이
절대로 파산하지 않는다는 보증이 있음으로써 지켜졌다.

예대 금리스프레드 차는 중간등급의 은행들에게조차 충분한 이윤을
보장할만큼 컸다.

시장분할과 보호체계로 경쟁이 제약됐으며 모든 금융기관들은 거의
엇비슷한 성장을 거듭했다.

이같은 금융제도는 매우 안전하긴 했지만 높은 비용을 수반했다.

소형기관은 높은 조달금리를 부담했으며 예금이자율은 낮았다.

개발초기단계에는 자금이 상당히 효율적으로 배분되었지만 경제가
성장하고 금융조직이 유동적이 될수록 특히 70년대중반부터 금융제도의
자금배분효율성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70년대중반부터 국내저축률이 국내실질투자율을 앞지르면서 금융제도의
규제완화는 불가피하게 되었다.

또 일본의 기업과 은행들이 세계시장으로 진출하면서 일본의 금융규제
완화에 대한 해외의 압력도 그만큼 증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경쟁확대, 풍부한 대출자금, 자본시장의 발전,
제도상의 변화는 두가지 주요한 결과를 낳았다.

먼저 지방은행 신용조합 농업협동조합등 소형금융기관이 약화되었다.

또 자본시장에서 대형은행들이 고객을 잃게됨에 따라 공격적인 경영을
하게 되었고 지역금융기관의 틈새를 파고 들었다.

86년 부동산가격이 상승하면서 금융기관들은 부동산을 담보로 부동산
사업에 자금을 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준비금의 규모가 줄어들면서도 신용조합이나
농업협동조합에 대한 예금보험제도가 갖춰지지 않았다.

게다가 은행감독제도도 미비한 상태였다.

지금까지도 대장성은 구좌당 1천만엔(명목)이 되는 2000년까지 예금에
대한 안전이 보장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몇몇 대형은행을 포함해 많은 금융기관들은 실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센문제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때문이다.

금융기관들이 파산했을 경우 대장성이 예금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정부자금을 사용하는 선례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당면한 중요한 문제는 소형금융기관이 파산했을 경우 악성대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주센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부주도의 합병을 통해서라도 상당한 소형금융기관들이 정리돼야 한다.

그래야 금융위기를 피할 수가 있다.

일본금융제도의 운영과 문제점들은 흔히 표면화되지 못했다.

제도가 투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융산업에서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은 어렵고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며
도덕적 위해,사기등의 달갑잖은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나서서 금융산업개편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실이 한국의 금융제도에 주는 교훈과 시사점은 무엇인가?

첫째 은행대출은 부동산과 같은 담보만으로 손쉽게 이루어져서는 안되고
사업이나 대출자의 현금흐름이나 사업가능성도 평가돼야 한다.

규제완화로 은행간 경쟁이 이루어지게 되면 은행은 보다 효율적으로
자금을 배분하게 된다.

둘째 규제완화와 함께 적절한 통제도 필요하다.

즉 유능하고 훈련을 잘 받은 정직한 감독자가 필요하다.

셋째 금융안정화의 핵심은 예금자보호이다.

그렇지만 모든 은행들이 파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은행의 규모가 방대하여 파산으로 인한 경제적 역효과가 큰 경우는
자산관리와 경영에 대한 감독이 더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

몇년전 미국의 컨티넨탈 일리노이즈 은행은 좋은 예이다.

논란의 여지는 많다하더라도 일정수준의 예금보험은 필수적이다.

일부 학자들은 시장경쟁을 통해 은행의 안전도를 투명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미국에서는 타당할지 모르나
일본이나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일본과 한국에서는 예금자보험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금융거래, 금융활동, 금융정책, 은행의 업무에 대한 투명성은
금융제도가 경쟁적이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일본의 제도는 금융당국과 은행간의 관계를 포함, 오랫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비밀을 유지할 필요도 있지만 비밀이 너무 많으면
특혜, 비효율, 도덕적 위해와 같은 문제가 야기된다.

오늘날 일본에서는 비밀과 문제해결능력부족때문에 대장성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떨어지고 말았다.

장기적인 금융제도의 목표는 예금자와 대출자, 은행에 충분한 인센티브를
주고 예금의 안전을 위한 감독이 적절히 이루어지며 투명성이 확보된 경쟁에
입각한 금융시장을 통합하는 것이다.

일본과 같이 한국도 이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오랜 과정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리 = 박영태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