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왕 에드워드3세(재위 1327~1377)가 어느 무도회에서 솔즈버리
백작부인 죠니의 파트너가 되어 춤을 추고 있었다.

무도회의 흥이 한창 무르익었을 때,부인의 양말대님(가터)이 바닥에
떨어졌다.

왕은 그것을 집어 자기 왼쪽 무릎아래에 매고는 주위 사람들에게
넌지시 말했다.

"이것을 악의로 해석하는 사람은 수치스럽게 여기도록하라"

기사도, 궁궐의 우아함, 왕의 권위의식 등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이야기지만 이것이 영국의 기사에게 수여되는 최고의 영예인 "가터훈장"의
유래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가터훈장을 받는 사람은 "가터의 기사"라고 불리고
훈장에는 당시 왕이 했던 말이 그대로 새겨져 있으며, 수훈자는 금테두리를
한 푸른 리본을 왼쪽 무릎아래 매도록 되어있다.

본디 훈장이란 물질적인 이익을 주는일 없이 오로지 수훈자의 명예욕을
자극해 은덕을 입히자는 권력자의 꾀에서 생겨난 것이고 보면 "가터훈장"이
야말로 가장 훈장다운 훈장인 셈이다.

훈장의 기원은 기원을 전후해 로마에서 군인이나 시인에게 승자의
표장으로 준 것이 시초라지만 일반적으로는 11세기의 십자군원정때
종교기사단(Order)의 표장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어 "Order"가 기사단과 훈위훈작을 함께 뜻하는 것도 그때문이다.

나라마다 각종의 훈장이 있지만 역사가 오래고 권위있는 훈장으로는
"가더훈장"외에 9년에 제정된 덴마크의 "다네브로그훈장", 1285년에
제정된 스웨덴의 "세라핌훈장" 프랑스의 나폴레온1세가 제정한 "레종도뇌르
훈장"이 꼽힌다.

미국에서는 1862년에 제정된 무공을 세운 군인에게 주는 "명예훈장"
이유명한데 1차대전때 96명, 2차대전때 432명,한국전쟁때 131명
월남전쟁때 238명이 이훈장을 받았다.

최근 제레미 마이크 버다 미해군총장이 월남에서 실제전투에 참여한
군인만이 달수 있는 "전투V"라는 장식핀을 훈장위에 꼽고 다닌 것이
밝혀지자 자살했다.

그의 자살을 미화시킬 생각은 없지만 자기에게 주어지지 않은 영예를
과시하고 다니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그곳의 사회풍토가 부러워진다.

한국에서 "양철로만든 꽃다발"에 지나지 않는 훈장제도가 고종때인
1904년 시작된 이래 훈격에 따른 11개의 훈장이 있다.

무공훈장만도 태극 을지 충무 화랑 인헌등 5등급에 이르고 월남에서의
무공으로 훈장을 받은 장군들도 수두룩하다.

그 가운데 일부가 자신의 영예를 어떻게 지켰는가를 돌이켜보면
훈장의 위력에 너무 약한 속성을 지닌 것이 한국사회가 아닌가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