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제시대에 대학예과에 들어간 첫해 여름방학에 친구 한 사람과
처음으로 경주를 찾았다.

먼지투성이 도로를 따라 불국사 앞 토함산여관에 도착, 짐을 풀고 우리는
불국사와 석굴암을 참배했다.

그리고 나는 "이곳이 바로 내 조국이로구나"하는 벅찬 감격에 떨고 있었다.

학교도 서울거리도 그 어디메도 조국은 없었지만 여기에 오니까 바로 이
웅장하고 숭고한 아름다움과 미소가 한없이 따뜻하기만한 어버이의 모습
이었다.

지금도 나는 이곳으로 세배를 온다.

그 여행에서 돌아와 나는 학교신문인 청량학보에 "신라기행"이라는 글을
써 실었다.

그 글에서 나는 "조선적인,너무나 조선적인 미"라는 문구를 썼다가
지도교수의 충고로 삭제한 일을 잊지 못한다.

그때 이래로 나에게는 많은 숙제가 남겨졌고 그것을 풀기 위해 나는
10여년후 동란으로 파괴된 서울을 떠나 유럽에 갔다.

서양중세사 강의를 듣다가 깨달은 바가 있었다.

모름지기 한국의 역사를 잘 알기 위해서는 그 긴 역사시대의 사상적
기조인 불교를 올바로 이해하고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이었다.

서양의 역사, 특히 그 중세의 역사를 가톨릭교회와 교리 및 그 반동으로
일어난 여러 운동에 대한 이해없이 말할 수가 없다는 것과 똑같은 이치
이다.

귀국후 나의 연구는 불교나 인도철학 일반에서 부터 중국과 한국쪽으로
집중되었고 드디어 나는 민족이 낳은 세계적 사상가 원효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를 아버지요 스승으로 모시고 한국인으로서의 자랑을 만방에
떨치며 사는 보람에 늙는 줄을 모르고 살아왔다.

숙제도 하나 하나 풀려갔다.

얼굴이 열두개 있는 십일면관음상의 의미가 단순히 미술적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철학 사회철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
도대체 석굴암의 구조는 어떤 우주론적 의미가 있는지 하는 것, 신라인의
불국토신앙(그들의 나라를 불국토라고 믿는 생각)과 산악숭배 정신이 경주
남산을 오랜 기간에 걸쳐 뜻있는 사람들이 마음닦는 곳으로 여기게 했다는
사실, 나에게는 박동선 사건으로 나라가 온통 모멸을 느끼던 때에도
경주가 있어서 아주 실망하지 않을수 있었다.

최근 두 전직대통령이 나라망신을 시키고 있을때에도 나는 경주를
바라보며 영원한 조국의 미래를 설계한다.

나는 일제시대 대학의 역사학도이던 시절에는 경주에 가 중학교 선생이나
하는 꿈을 꾸었고, 그후 조국이 해방되어 대학교수가 되니 나는 직접
그 신라인의 숨결을 몸으로 느끼며 살기 위해 자리를 바꿔 영남대학으로
와서 주말마다 서라벌 옛풍취를 찾아 헤맨 일이 부지기수이다.

정년후에도 나는 자청하여 경주의 분교에서 옛꿈을 실현하기도 했다.

아마도 나는 죽어서 가루가 되어 경주의 어느 골짜기, 화랑들이 묻혀
지금도 살고있는 그 어디로 갈것을 희망하고 있다.

신라천년의 고도 경주는 신라문화가 우리 역사상 세계에서도 독특한
찬란한 빛으로 가득찬 것임을 아는 그 아들.딸들에게는 천만금 수조원과도
바꿀수 없는 민족의 보배이다.

따라서 역대 정부는 그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고 지켜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

다행히 문화체육부가 그러한 뜻이 담긴 경부고속철도 노선안을 내놓아
오랫동안 규제만으로 불이익을 당해온 경주시민들에게도 희망을 갖게
한것은 매우 잘 한 일이다.

물론 아직도 보완해야 할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

그리고 건교부가 처음에 다소 경솔하게 노선을 결정하고 지금 이에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점에 대하여는 일찌감치 그 원안을 파기하고 학계나
문화계의 여론을 존중하는 것이 후환을 적게 하는 길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경주는 천년 민족의 숭고한 얼과 문화가 숨쉬는 곳이다.

이것을 하루아침에 파괴해버리는 것은 만행이다.

최고결정권자의 선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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