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난 고장에 의해서 성격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먹는
곡식에 따라 성품이 정해진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곧 한국인도 다른나라에 가서 살면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그 나라 사람을 닮는다는 뜻인데, 역으로 외국인이 한국에 와 살면서
오랫동안 우리 음식을 먹다보면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 된다는 것과
같다.

펄벅의 소설에는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미국인 목사가 중국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바뀌어 공산국가가 된 후에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가 숙청되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도 음식문화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가를 말해주는 한 예일 듯하다.

요즘 아이들은 김치 없이는 살아도 피자 없이는 못 산다고 한다.

물론 다소 과장된 말이긴 하나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된 데는 어른들의
책임이 없지 않다.

우리의 음식문화가 서구화(정확히 말하면 미국화)되기 시작한 것은
1945년 해방 이후부터일 듯한데, 그때 우리는 미국의 잉여농산물인
밀가루와 옥수수를 먹고 살았다.

일제의 사슬에서 풀려난지 얼마 안되어 경제가 파탄지경에 놓였던
당시의 우리로서는 어쩔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세계 12위의 무역국으로
자동차와 선박, 전자제품까지 생산하는 공업국이 되었음에도 우리 국민의
의식속에 아직도 외제물품 선호사상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창피한 일이
아닐수없다.

김치와 된장을 싫어하고 피자만 좋아하는 아이가 제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사랑하는 긍지 높은 국민이 될수 있을까.

우리가 진실로 세계화를 이룩하려면 이런 주체성 없는 생각부터 고쳐야
하는데, 그러러면 무엇보다도 가정과 학교에서 국적있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