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수 < 삼성카드 대표이사 부회장 >

전당포는 30년대 한국소설에 등장하는 주무대중 하나였다.

하도 오래되어 그 작가가 누구이며 제목이 무엇인지도 기억이 안 나지만,
밤새워 노름을 하다가 돈을 다 잃은 주인공이 새벽같이 집으로 달려가서
마누라가 아끼던 은가락지를 꺼내들고 전당포로 달려가는 장면을 읽은 적이
있다.

이렇듯 전당포란 서민들이 갑자기 돈 쓸일이 생겼을 때 찾아가기 십상인
그 시대의 금융기관이었던 셈이다.

하기야 예나 지금이나 은행은 문턱이 높은 곳이니 힘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서민이 급전을 구하려면 그 길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전당포가 80년대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

아주 다 없어진 건 아닐테지만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그런 전당포를 얼마전에 종로 뒷골목의 낡은 건물에서 발견했는데 이용자가
별로 없는지 한낮인데도 문이 잠겨 있었다.

한때 서울에만도 1천여곳,전국적으로 2천5백개가 넘었다던 전당포가 이렇게
사양길을 걷게 된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즉, 우리 경제가 80년대이후 급성장을 함에 따라 서민들이 그 이전보다는
돈을 구하기가 쉬워졌음을 뜻하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가정 경제가 충실
해지고 각자의 생활태도 역시 견실해졌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곧 국민들의 경제의식이 크게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일인데,
여기에는 신용카드의 활발한 보급과 의료보험의 실시, 각종 보험제도의
정착도 일조를 했으리라 믿는다.

장차는 지금 남아있는 전당포마저 없어질 것이라는게 필자의 예상이지만,
서민의 애환이 담겼던 그 시대적 유물이 아주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일말의
아쉬운 느낌도 없지 않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