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윤대 < 고려대 교수/한국금융학회 회장 >

한국 주식시장은 묘하다.

작년에는 기업의 매출이나 이익이 괄목할 만큼 증가했다.

인플레 율도 낮고 경제성장률도 높았다.

심지어 IMF(국제통화기금)에서 1995년도의 한국경제 성과는 세계 최고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주가는 곤두박질했다.

자본시장은 시장에서 정보가 주가에 빠르게 반영되므로 효율적 시장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의 통계적 검증도 효율적으로 나온다.

주식시장에서는 없는 정보가 없고 이런 정보들이 주가에 반영된다.

사회가 불안하면 근거없는 루머가 범람하게 되는데 작년에는 신빙성없는
루머가 많아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지나고 보면 엉뚱한 루머도 맞는 경우가 있었다.

예컨대 통화공급량이 안정적으로 풀리므로 시중에는 크게 자금경색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에"무슨 소리 하느냐"는 반문을 받은 적이 있다.

"한국은행에서 돈이 풀리면 무엇합니까.

돈이 창고에 쌓여 있는데.

돈이 돌아야지요"하고.

최근 주가가 오르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경제성과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정치-사회적 불안이 가라앉는 것 같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아시아 비즈니스"지에서는 한국을 펀드 매니저가 본
1996년도 아시아 최고 시장으로 꼽았다.

지난 2~3년간의 뛰어났던 경제실적을 증권시장이 적절히 반영시키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한국 주식시장은 잠재성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한국 자본시장이 발전하기에는 아직도
개선되어야 할 제도적인 당면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자본시장이 보다 투명화되어야 되겠다.

투명화를 위한 두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회계정보가 객관화되고 검증되어 이해관계자에게 신빙성을 제공해야 하고
내부자거래가 엄격히 규제되어 부당이익이나 선의의 피해자가 없어야 된다는
것이다.

외국 기관투자가로부터 종종 듣는 불평은 한국의 재무제표를 믿을수 없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도 기업 그룹의 연결 재무제표가 제대로 작성되지
않고, 공인회계사의 회계감사 절차가 철저히 이루어지지 않아 부실감사
사례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룹전체의 매출액을 마음대로 부풀리거나 그룹내부자간의 이전
거래를 통한 이익의 조작을 가능케 하고, 또한 신규 상장기업체가 얼마되지
않아 부도가 날 정도로 회계감사 보고서가 철저하지 못해 선의의 투자자나
채권자가 손해를 입게 한다.

증권감독원이나 공정거래위원회 기능을 강화하여 감시-감독하는 방법도
있겠다.

또한 공인회계사의 책임을 강화시켜 피감사 대상업체와의 담합을 못하게
하고 엄격한 감사를 하게 만드는 방안도 강구되어야 하겠다.

공인회계사는 감사한 결과에 대해서 사회적-금전적인 책임을 지고,
그 막중한 책임에 대한 대가로 응당한 보수를 피감사기관인 상장 기업체로
부터 받아야 되겠다.

자칫 잘못하면 공인회계법인들이 영업적인 측면을 강조하여 사회적인
공기관 역할을 등한히 하기 쉽다.

미국 회계법인들의 성장과정에 비추어보면 앞으로 소송을 통한 공인
회계사에 대한 책임추궁이 계속될것 같고, 외국인 투자의 증가에 따라서
해외투자가의 손해배상청구도 생길 가능성이 있다.

기관투자가의 기능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자본시장의 규모가 작아서 가격변동이 심하거나 시장위험에 대한 일반
투자자의 인식이 부족한 증권시장 초기발전단계에는 기관투자가의 급격한
주가변동 방파제역할이 중요하다.

따라서 기관투자가에게 정부방침에 순응하는 사회적 책임이 요구된다.

그러나 상장기업체 수, 시장규모, 투자가의 수준, 외국인의 국내주식소유등
시장환경이 달라지면 변화에 걸맞는 기관투자가의 기능이 필요한 것이다.

시장가격을 받치기 위한 매도금지 지시, 정부발권 채권의 소화창구로서의
투자신탁회사의 자금운용등 행정적인 규제를 철폐해야 되겠다.

기관투자가는 이제 정부정책의 집행자로서의 역할보다는 주주나 신탁
가입자의 이익극대화를 최대목표로 삼도록 하고 시장메커니즘에 따라
경영을 하도록 해야 되겠다.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르는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문제해결도 정부의
개입보다는 시장메커니즘에 따라서 이루어지도록 해야되겠다.

금융기관을 산업자본이 지배해서는 안되겠다는 주장의 타당성은 있겠으나
시장 메커니즘을 통한 합병-인수(M&A)가 한국은행 자금이나 국민의 세금에
의존하는 방법보다는 더 바람직한 대안인 것 같다.

증권시장의 발전을 기업의 부채구조 개선과 연계시켜야 되겠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부채비율을 갖고 있는 한국기업의 부채의존도를 낮추되
증권시장에 이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상장기업체의 증자기회가 폭넓게 제공되어야 한다.

주가를 받치기 위하여 주식공급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증자를 못하게 하는
근시안적 처방보다는 증자된 자금으로 은행차입금을 상환시키는 대안을
모색하여야 될 것이다.

예컨대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의 경우에는 일정률이상의 이자지급은 세금
계산상 손금으로 인정하지 않는 방안도 있을수 있겠다.

또한 정책자금을 통해서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보다는 중견 중소기업들이나
벤처 기업들이 장외시장에 상장될수 있도록 조세정책을 통한 유인책을 강구
해야 될 것이다.

남의 자금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경영풍토보다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사업성있는 프로젝트가 생기면 공동출자로 리스크를 같이 지고,
혜택도 같이 나누어 가지는 풍토가 조성되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