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삼복철로 접어들었다.

보옥은 아침 늦게 일어나 대관원을 어슬렁 어슬렁 빠져나왔다.

대부인에게 문안 인사를 드린 후 희봉에게로 놀러 가볼까 하고 희봉의
거처로 가보았다.

그런데 희봉은 더운 날이면 낮잠을 자는 버릇이 있어 보옥이 찾아갔을
때도 낮잠에 곤히 취해 있었다.

시녀들까지 낮잠을 자는지 온 집안이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하긴 그 시간에는 희봉네만이 낮잠을 자는 것은 아니었다.

보옥이 대부인에게 인사를 하고 나올 때도 대부인 역시 낮잠 잘 준비를
하지 않았던가.

여자들은 왜 이리 잠이 많은 것일까.

보옥은 그런 생각을 하며 각문을 돌아 왕부인의 방으로 가보았다.

방 안에는 시녀들 서너 명이 바느질감을 손에 든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고, 왕부인은 아예 침대에 누워 깊이 잠이 들어 있었다.

왕부인 옆에는 시녀 금천아가 편한 자세로 앉아 왕부인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그런데 금천아도 졸음이 몰려 오는지 고개가 모로 기울어진 채 입가에
침까지 흘리며 왕부인의 다리를 주물렀다가 말았다 하고 있었다.

보옥이 살금살금 다가갔을 때 금천아는 두 손을 왕부인의 다리에 얹어만
두고 끄덕끄덕 잠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위로 올려져서 벌어진 치마 사이로 금천아의 허연 장딴지가 드러나
보였다.

보옥은 자기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그리고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모두 졸고 있거나 자고 있어 보옥을 지켜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보옥은 금천아의 등뒤로 돌아가 슬그머니 금천아를 뒤에서 껴안았다.

물컹, 금천아의 젖가슴의 감촉이 보옥의 손바닥으로 전해져 왔으나,
금천아는 잠에 취해 고개를 이쪽으로 떨어뜨리고 저쪽으로 떨어뜨리기만
할 뿐 누가 자기를 껴안은 것도 모르고 있었다.

보옥은, 단정하게 빗어 올렸으나 지금은 좀 흐트러진 금천아의
머리채에다 코를 묻어보았다.

땀내와 함께 풀향기 같은 것이 콧속으로 파고 들었다.

"으응"

금천아가 무슨 촉감을 느끼는지 잠꼬대처럼 신음소리를 얕게 뱉었다.

꿈속에서 어느 남자에게 안겨 있는지도 몰랐다.

금천아를 더 안고 있다가는 금천아가 깨어날지도 몰라 보옥이 슬며시
팔을 풀고 침대 이쪽으로 돌아나왔다.

금천아의 얼굴이 정면으로 보였는데 침이 새어나온 두툼한 입술이
여간 육감적이 아니었다.

보옥은 금천아의 입술에 묻은 침까지 핥아 먹고 싶었다.

그렇게 보옥은 한번 욕정이 발동하면 걷잡을 수 없는 충동으로 빠져드는
습성이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 왕부인 앞에서 어찌 충동대로 행동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