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요사이 여성의 삶과 멋을 평가하는데 있어 누가 더 많은 보석과
비싼 의상을 가졌는가를 따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보다는 사회봉사활동과 문화예술사업에 얼마나 많이 참여하는가를 멋있는
여성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미국뉴욕에서 온 친구가 이같은 사실을 전해주었을 때 마치 필자를 격려
하는 듯해 흐뭇하고 고마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미술품을 수집하고 미술관을 건립하는데는 여성의
역할과 공헌이 컸다.

중세의 암흑을 뚫고 르네상스미술이 꽃을 피우던 시절 이태리 피렌체의
메디치가여인들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던 천재화가들의 그림을 수집하고
그들을 도와줌으로써 오늘날 세계적인 르네상스미술의 보고인 우푸치미술관
의 설립을 가능하게 했다.

그 결과 미켈란젤로, 다빈치, 보티첼리, 라파엘로같은 르네상스미술의
대표작가 작품들이 지금도 이태리는 물론 전세계인의 사랑속에 그 아름다움
과 뛰어난 예술성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1572년 메디치가의 코지모1세는 당시 피렌체시를 위해 사법과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우푸치(영어로 오피스)건물을 지어 주었는데 그뒤 1581년 이 건물
맨위층에 메디치가 여인들이 수집해 놓은 미술품을 전시함으로써 오늘날
우푸치미술관의 시초를 마련했다.

이후 1737년 메디치가의 마지막여인인 안나 마리아 루도비키가 메디치
콜렉션 전부를 시에 기증함으로써 피렌체 르네상스문화의 영원한 꽃이 된
우푸치미술관이 탄생됐다.

현대미술품 10만여점을 수장, 현대미술의 제1보고로 꼽히는 뉴욕현대미술관
또한 여성의 힘으로 이뤄졌다.

1929년 한 섬유제조업자의 딸인 릴리 블리스여사와 희귀서적및 미술품
수집가였던 코넬리우스 셜리번변호사부인, 그리고 록펠러부인등이 보수적인
미술품이 아닌 현대미술품을 수집하면서 현대미술관을 설립했던 것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오랫동안 화랑을 경영하면서 수집한 작품들로 베니스에
아름다운 미술관을 설립한 패기 구겐하임여사와 지방문화를 사랑하는 마음
으로 고향인 경주에 선재미술관을 설립한 우리나라의 정희자 힐튼호텔회장도
마찬가지 경우이다.

언제 어디서나 여성의 힘은 강하며 그 힘이 문화예술계에 쏟아질 때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은 더욱 더 발전되리라고 확신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