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주식시장과 세계증시는 한 침대에 누워있다.

한쪽이 뒤척이면 다른 한쪽이 즉각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세계증시가 기침을 하면 한국증시도 기침한다.

한국증시의 세계증시 예속화라는 의미가 아니다.

한국자본시장의 개방속도가 빨라지고 기업들의 글로벌 경영체제가 확대
되면서 한국증시와 세계증시는 이제 뗄래야 뗄수없는 관계가 됐다는 것이다.

한국증시와 세계증시의 동거관계는 동일 업종간 주가동조화현상과 미국등
주요국가의 금리흐름에 따른 한국증시의 외국자금 "영향론"으로 대변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이 한국증시가 외국인에게 개방된 지난 92년부터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는 곧 한국증시가 세계증시와 같이 움직인다는 새로운 명제가 성립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있다.

우선 한국증시와 세계증시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 분석할수 있는 근거는
주가동조화현상이다.

이 동조화현상은 내수관련주보다 반도체 철강 자동차 조선화학 등의
업종에서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반도체업종의 삼성전자-인텔, 철강의 포철-유에스스틸, 자동차의
현대자동차-포드, 조선의 대우중공업-이시카와지마는 주가동조화현상을
설명할수 있는 대표기업들이다.

이중 삼성전자와 인텔의 주가는 아예 금슬좋은 부부처럼 같이 붙어다니고
있다.

장기주가추이를 그려낸 그래프를 보면 눈을 의심할 정도로 동일하다.

이같은 현상은 메모리반도체 생산업체인 미국의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마이크론과의 비교에서도 발견할수 있다.

삼성전자와 인텔의 경우 국내 주식시장이 개방된 92년부터 인텔의 주가가
내릴 때 삼성전자의 주가도 내린 것을 알수 있다.

그래프를 따라 올라가면 장기적 상승국면일때는 동반상승했으며 바닥을
찍을 때는 같이 바닥을 찍었다.

외국인의 주식투자한도가 개방당시 10%에서 12%와 15%로 각각 확대됐던
94년과 95년에는 삼성전자의 주가가 외국인의 매수세유입에 힘입어 상승폭이
더 컸으나 상승추세면에서는 같다고 할수 있다.

특히 95년말과 올해에는 주가그래프가 거의 겹쳐 움직이는 극동조화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포드사도 삼성전자-인텔의 "부부관계"에 못지 않다.

92년말부터 두 회사의 주가는 등락을 거의 같이 하고 있다.

올 들어서는 트윈커브(쌍둥이곡선)를 그려내고 있다.

포철과 미국의 유에스스틸도 상승폭만 다를 뿐이며 대우중공업과 동일업종
경쟁상대인 일본의 이시카와지마사와 비슷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같은 주가동조화현상은 한국기업들이 세계선두그룹에 들면서 세계시장의
수급에 따라 실적이 같이 움직이고 있는데서 비롯되고 있다.

반도체 시장이 나빠지면 뉴욕증시나 한국증시에서 인텔과 삼성전자에 대한
매수세는 똑같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가끔씩 보도되는 메릴린치보고서와 반도체전문분석가인 릭 위팅턴의
보고서 내용에 따라 전세계 반도체 생산기업의 주가가 춤을 추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과 독일의 금리움직임도 한국증시의 흐름에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 양국의 금리변동은 세계자금 흐름을 바꿔 놓는다.

시장이 개방된 한국증시 역시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두나라가 금리를 인하할 경우 자금은 채권보다 주식투자로 유입된다.

지난 94년12월 정부의 외국인투자한도 확대에도 불구, 국내 주가가 떨어진
것도 바로 미국의 금리인상 조치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국내에 있던 외국자금이 채권금리를 따먹기 위해 미국으로 빠져나가면서
주가가 약세를 면치못했다고 분석가들은 설명하고 있다.

외국인투자한도 확대로 주가가 오르리라는 계산이 바다건너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빗나간 것이다.

외국의 금리동향이 한국증시에 얼마나 민감하게 작용하는가를 보여준
사례이다.

반대로 95년 7월 2차한도확대때에는 미국이 금리인하를 단행, 한국증시로의
자금유입이 늘어나 주가흐름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오는 4월부터 외국인투자한도가 세번째로 확대될 예정이고 오는 5월
에는 주가지수선물시장이 외국인에게 개방되는 만큼 한국증시와 세계증시는
보다더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한국증시와 세계증시의 이같은 긴밀성은 투자자들에게 "세계기업과
세계증시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한다"는 새로운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 고기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