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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 금호그룹회장(65)이 오는 6일 회장직을 동생인 박정구 부회장에게
물려주고 명예회장으로 물러 앉는다.

그룹 창립 50주년을 맞아 경영일선에서 은퇴하는 것이다.

박회장은 지난 84년 부친인 박인천회장 타계직후 그룹 총수에 올라
제 2민항 사업권(아시아나항공 설립)을 따냄으로써 "타이어 재벌"이라는
그룹이미지를 일신했다.

최근엔 개인휴대통신(PCS) 사업 진출을 위해 국내외를 마다않고 동분서주
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회장 취임당시 6천9백억원이던 그룹 매출을 지난해 4조원 규모로
끌어 올리는등 그룹 덩치도 키웠다.

대학교수 청와대 경제비서관 등을 두루 거친 그가 경영에서도 "성공"을
거둔 셈이다.

만 11년간의 그룹 총수자리를 뒤로 하고 조용히 물러나는 박회장을 본사
유화선부국장대우 산업1부장이 아시아나빌딩 7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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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도 많지 않은데 왜 물러나십니까.

<> 박회장 =나이가 왜 많지 않습니까.

60세 넘었으면 많은 거지요.

사실 7년전부터 환갑이 되면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60세가 되니 당시 아시아나항공이 발족된지도 얼마 안됐고
동생들이 하도 말려 5년만 더하기로 했었지요.

-은퇴 시기를 굳이 60세로 잡은데는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까.

<> 박회장 =나이 60이면 인생의 한 주기가 끝나는 것 아닙니까.

이후엔 제 2의 인생을 살아야지요.

아무래도 나이가 많으면 창의력도 떨어집니다.

기본적으로 최고경영자는 60세가 넘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제2의 인생은 어떻게 시작하실 계획입니까.

<> 박회장 =밥은 먹고 살아야 하니 일은 해야죠.

명예회장으로 물러나 그동안 추진해오던 해외사업이나 마무리지으려고
합니다.

또 금호문화재단 일에 주력할 겁니다.

가장 큰게 음악당 건립 계획이죠.

1천5백석 규모의 훌륭한 콘서트 홀을 한번 지어 보려고 합니다.

-대학강단에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습니까.

<> 박회장 =내가 배운 지식이라는 게 모두 30~40년전의 "낡은 지식"인데
가능하겠습니까.

-회장직을 아들에게 물려줄 생각은 안했습니까.

<> 박회장 =자기가 원하면 몰라도 될수 있으면 사업은 말리려고 합니다.

해보니까 권할 만한게 못되더라구요.(웃음)

-"경영은 기회와 도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경영을 하면서 기회는
언제였습니까.

또 위기가 있었다면 어느 때였나요.

<> 박회장 =가장 힘들었을 때는 80년대 초였지요.

70년대에 이 사업 저 사업 벌이다 보니 적자회사가 많이 생겼거든요.

그땐 정말 사업을 집어치우고 싶었어요.

기회는 80년대 후반에 찾아왔지요.

계열사를 통폐합하는 등 그룹조직을 가볍게 하고 나니까 자본이익률이
국내기업중 최고가 되더군요.

이게 88년 민항사업 진출의 발판이 됐던 겁니다.

-"경영이 이런 거구나"하는 감은 언제쯤 들었습니까.

위기 때였습니까, 기회가 찾아왔을 때였습니까.

<> 박회장 =글쎄요.

내가 사업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은 역시 경영이 어려울 때 들더군요.

-아시아나항공은 재작년부터 이익을 내기 시작했다지요.

그동안 어려운 점이 많았을 텐데요.

반면에 후발자의 메리트도 있었을 테고.

<> 박회장 =선점시장에 비집고 들어간다는 게 역시 힘들더군요.

무슨 사업이든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10년 정도는 걸리는 것 아닙니까.

한 3년 더 고생해야 완전히 자리가 잡힐 겁니다.

대한항공의 오랜 독점체질을 역으로 이용할수 있었던 건 후발자가 볼수
있는 덕이었고요.

-금호가 현재 추진중인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은 직접 챙기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던데.

<> 박회장 =그렇습니다.

금호는 창립 50주년 이후인 그룹 후반세기를 대비해 두개 분야에 신규
진출을 계획했었지요.

생명과학과 정보통신 사업이 그것입니다.

이중 정보통신 사업은 "관허사업"인 만큼 맘대로 되는게 아니라고 봅니다.

-PCS사업은 역시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라고 보십니까.

<> 박회장 =너무들 낙관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쟁이 치열하면 사업은 그만큼 재미가 없는 법 아니겠어요.

경쟁에서 이기면 "황금알"이지만 지면 "망하는 것"이 정보통신 사업이
될텐데...

-"관허사업"은 그 자체가 정부규제를 뜻하고, 그래서 정부규제는 기업의
창의와 자율을 저해하고 책임경영도 어렵게 만든다고 봅니다만.

<> 박회장 =궁극적으로 모든 규제를 풀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지요.

특히 신규사업 참여를 막는 구실인 "과당경쟁"이란 말은 없어져야 합니다.

과당경쟁이란 말은 원래 일본에서 기존 사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생긴
말인데 이걸 규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남용들 하고 있지요.

기업들이 자유롭게 경쟁하는 게 왜 나쁩니까.

더구나 지금은 국경이 없는 무한경쟁시대이니 경쟁을 두려워해선 안됩니다.

-"보더리스 경제(borderless economy)"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기업들이
밖으로 많이 나가는 작금의 현실을 어떻게 봅니까.

규제도 한 원인 아닐까요.

<> 박회장 =그렇게 볼수 있겠지요.

그러나 외국과 경쟁할수 있는 길은 그것 밖에 없는 것 또한 사실 아닙니까.

국민소득이 1만달러가 넘은 지금 국내에서 더 성장하기엔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테니까 밖으로 나가야지요.

-세계화해야 한다고 하니까 "빨간 불이 켜져도 모두 함께 건너면 괜찮다"는
식으로 너무 우루루 몰려 나가는 건 아닌가요.

산업공동화 우려도 있고요.

<> 박회장 =괜찮습니다.

물건을 꼭 국내에서 만들어 팔아야 한다는 생각은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서비스업으로 먹고 사는 방법도 많아요.

작은 나라일수록 제조업보다는 서비스 마케팅 등에 특화해 잘사는 나라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현재 건설중인 영종도 신공항을 동아시아 중심지로 개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지요.

북경~서울~도쿄를 연결하는 이른바 베세토(BESETO) 개념을 녹인 공항을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요.

<> 박회장 =물론입니다.

영종도 신공항을 비행장으로만 생각해선 안됩니다.

내 생각엔 이곳을 하나의 국제사회 모델로 만들었으면 해요.

홍콩 처럼요.

외국인들이 마음대로 들어와 제한없이 사업을 할수 있도록 말입니다.

아예 외국인들이 그곳을 스스로 개발해 영구히 살도록 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할까요.

<> 박회장 =이젠 그런 발상도 받아들일수 있어야 합니다.

세계화가 뭡니까.

바로 그런게 세계화예요.

-정부나 국민이 기업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니까 발상전환이 안되는
거겠지요.

아직도 일부에선 기업을 사시로 보는 "반기업적 풍토"가 잔존해 있고...

이런 원인은 자본주의가 잘못 뿌리내린 탓 아닐까요.

<> 박회장 =여러가지가 있겠지요.

우선 대기업이 고도성장과정에서 갑자기 운좋게 떼돈을 벌었다는 인식을
들수 있을거고.

또 한국인들에겐 평등사상이 지나쳐 일부에선 "서민귀족"이 생기는 등
"악평등"으로까지 흐른 것도 한 원인일 겁니다.

-그렇다면 한국기업의 경영방식이나 문화도 이젠 바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식으로 변해야 할까요.

<> 박회장 =변화하려고 들면 간단해요.

기업주들이 정직하고 능력있는 경영자를 쓰면 됩니다.

능력있는 경영자란 현상유지 "경영관리자"가 아닙니다.

능동적으로 경영에 도전하는, 말하자면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자"여야
합니다.

물론 "오너는 망할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말처럼 오너이기 때문에
공격적인 경영을 할수 있긴 하지만 자신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잘 할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너의 자질중 가장 중요한 건 뭐니뭐니 해도 사람 보는
눈이라고 말합니다.

-학자 공무원 기업총수 등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학자는 어떠해야 하며,
또 공무원과 기업인의 바람직한 자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박회장 =공무원은 공익을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이 투철해야 합니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초월할수 있어야지요.

학자들은 한눈을 팔지 말아야 해요.

박정희대통령 시절부터 대학교수를 장관이나 국회의원으로 끌어다 악용
했는데 이건 퍽 안좋은 겁니다.

그야 말로 외도지요.

또 경영인은 세계 경제동향등 밖을 보고 회사를 어디로 이끌어갈지를
결정할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서두르는 등 선진국 진입을
장담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 박회장 =선진국 대열에 끼이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더 중요한 건
계속 그 대열에 남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이걸 낙관할 수가 없다는데 있습니다.

앞으로 시장이 완전 개방돼 외국상품이 들어오면 대부분의 산업은 생존
자체가 불가능할 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한국 경쟁력으론 걱정스런 게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해결책은 없겠습니까.

<> 박회장 =국민들의 생활부터 검소해져야 합니다.

우린 너나 할 것 없이 너무 소비수준이 높아요.

한국상품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높은 소비수준을 유지하자니 임금이 올라가고 금리도 높아지는 것이지요.

기본적으로 생산요소 비용이 이렇게 높아서는 외국과 경쟁할수 없습니다.

-특히 어떤 부문의 소비수준이 높은 건가요.

<> 박회장 =밤에 유흥가를 보세요.

정상적으로 벌어서 그렇게 쓸 수 있겠습니까.

음성수입(사이드 인컴)이 없인 그런 생활 못하지요.

음성소득이 뭡니까.

그게 다 부정부패의 소산 아닙니까.

물론 갑자기 소비수준을 낮추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겁니다.

그래서 내 생각엔 방법이 딱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여성을 일터로 보내는 거지요.

가장만 벌면 생활이 안될테니 많은 여성들이 직업을 갖고 함께 벌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도 원천적으로 깨끗해지는 거예요.

-선대 회장으로부터 자주 듣던 좌우명 같은 게 있을텐데요.

또 회장직을 물려줄 동생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미리 듣고 싶습니다.

<> 박회장 =선친은 "정"에 대한 신념이 강한 분이었습니다.

가장 심한 욕으로 "불량한 놈"이란 말을 쓰시곤 했지요.

나도 이런 점을 동생에게 강조하고 싶습니다.

-재계에선 금호 형제들 만큼 우애가 깊은 사람은 없다고들 하는데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 박회장 =어차피 부모 돈인데 그걸 갖고 왜 자식들이 싸웁니까.

싸운다는 건 효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끔 어머님께 용돈을 드릴때도 "이건 아버지가 벌어놓은 돈이니까
맘대로 쓰세요"라고 합니다.

우리 형제들은 욕심을 버리려고 노력합니다.

욕심을 가지면 틈새가 벌어지게 마련이거든요.

또 우리 4형제는 어떤 사업을 해도 4분의 1씩 공동출자를 합니다.

형제중 한사람이라도 따로 나가 독자적으로 하면 문제가 생긴다고 봅니다.

그룹 자원이 그리로 빠져 나갈수 밖에 없고 그러면 싸움이 날수 밖에
없지요.

-취미나 하시는 운동은.

<> 박회장 =음악 듣는 걸 좋아해요.

운동은 걷는 겁니다.

요즘은 러닝머신으로 하루에 한시간 정도씩 걸으면서 음악도 듣고 영화도
봅니다.

걸으면서 TV 영화는 소리를 꺼 놓고 자막으로 보고 귀에는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니까 동시에 3가지를 다 즐기게 되지요.

-음식은 어떤 걸 좋아하십니까.

부인께서 외국인이니까 육식을 많이 하시겠지요.

<> 박회장 =천만에요.

야채를 많이 먹습니다.

우리집에선 쇠고기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약주는 어떻습니까.

<> 박회장 =요즘엔 조심하려고 하는데 어떤 땐 그게 잘 안돼요.

-약주 드시면 잘 하시는 노래라도 있습니까.

<> 박회장 =듣는 것은 좋아하지만 부르는 것은 잘 못합니다.

기껏해야 "노들강변" 정도예요.

< 정리=차병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