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창 벌어지고 있는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일본의 군국주의가 만들어
강요했던 "국민학교"라는 용어가 광복하고도 50년이 지나서야 "초등학교"로
변했다.

까짓 이름이나 변해서 무엇이 크게 달라지겠느냐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제도의 이름이라도 먼저 변해야 의식도 따라 변하는 것이 사람의 습성이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국민학교"로 남아 있으면서 우리 초등교육이 얼마나 왜정시대 교육 비슷한
것을 답습했는지 곱씹어보면 신물이 날 지경이다.

중등학교도 좀 변할 것 같은데 아직 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대학은 어떤가.

이른바 "학부제"라는 것이 어렵사리 일부 대학에 도입되었지만 그 개념은
상당히 불확실한 채로 남아 있다.

오늘날 다수의 한국 대학 교수들이 외국,특히 미국 대학에서 공부를 했고
그쪽 대학이 좋다고 찬양 일색이면서도 그와는 전혀 다른 한국대학에 일단
자리를 잡고서는 참으로 편하게 안주하고 있다.

광복 전에 일본 대학에서 공부한 교수들은 다 은퇴했고 뒤이어 서양 대학에
유학했던 교수들이 들어와서는 한국 대학을 서양의 모형을 참조하여 고쳐
보겠다는 의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적 현실 운운하면서 재래식이야말로 영원무궁할 방식이라고
믿어 적극 옹호하기까지 한다.

바로 이 재래식이 일본식을 그대로 본뜬 것임을 모르는 척한다.

일본식 대학이라고 다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학생 선발을 몇십
명씩 학과 단위로 해가지고 교육도 학과단위로 하는 일본식은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우리는 하도 이 제도에 익숙하여 대학은 으레 그래야 하는 줄로 착각하기에
이르렀지만 국문과 30명, 관광과 40명, 비서과 60명 따위의 모집 정원제도가
철칙으로 되어 있는 데는 일본 한국 등 몇나라와 일부 사회주의 국가들
외에는 없다.

그런데 그런 학과별 학생 정원 제도 자체가 일본 대학에서 학생 증원의
유일한 방편으로 적극 개발되었다고 하니 그 짓을 대학교육의 금과옥조처럼
묵수하는 우리는 도대체 무슨 꼴인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일본 대학들은 세계 대학 순위에서 하나도 상위에
들지 못하는데 그 큰 이유가 대학들, 특히 그 많은 대형 사립대학들이
재단의 후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교비의 60%이상을 학생들의 공납금으로
충당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학생이 많으면 그만큼 수입이 많아지므로 꼭 학생수를 늘려야
하는데 이는 문부성의 철저한 통제사항이다.

그래서 고안해낸 묘책이 정원 몇십 명의 학과 창설을 그럴싸한 이유를
붙여 문부성에 신청하고 적절히 교섭을 벌여 모집 허가를 받아 내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큰 대학들을 보면 기기묘묘한 이름의 학과들이 각각 몇백
몇십명의 고정 고객을 확보한 백화점의 입주 점포들처럼 줄지어 있다.

뿐만아니라 그렇게 학과 신설 허가를 따낸 공로자들은 그 학과의 실질
소유주가 되어 자기 제자들 중에서만 신임교수 강사를 뽑아 쓰고 그 학과에
들어온 학생들을 오갈 데 없는 양떼처럼 엄중히 단속한다.

어쩌면 우리 나라 대학과 그리도 신통하게 같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만큼 우리는 철저히 일본식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광복 직후 전문학교들이 대학으로 승격하면서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대학들은 버려두고 대뜸 손쉽게 일본식을 채택했던 것이다.

중등학교 개혁에는 큰 걸림돌이 있다.

우리 대학들이 일본식에서 탈피하지 않는 한 중등학교의 개혁은 무망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 깨달아야 한다.

대학 입시에 중등학교 교육이 매달려 있는 기현상은 바로 일본식 대학제도
의 대표적 역기능이다.

그러므로 대학개혁은 대학에 국한되지 않고 중등학교를 포함한 교육전반에
미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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