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기획실 김학수차장은 묘한 식사버릇이 있다.

생선을 먹을 때 절대로 뒤집어 먹지 않는다.

부인이 먹기 좋으라고 뒤집어 줄라치면 펄쩍 뛴다.

김차장의 이런 버릇은 입사하고 나서 생겼다.

선배사원과 식사중 생선을 뒤집었다가 호된 꾸지람을 들은 뒤부터다.

생선을 뒤집으면 배가 전복된다며 야단을 맞은 것.

김차장만 그런게 아니다.

해운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대개 그렇다.

해운업계엔 "생선을 뒤집으면 배가 뒤집힌다"는 징크스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각 업계에는 특정한 행동이나 현상 등에 독특한 의미를 두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해운 항공 자동차 증권등 사고위험이 있거나 우연적인 요소에 성과가
좌우되기 쉬운 업종일수록 더욱 그렇다.

예컨대 조선업계에는 "처녀"가 배의 이름을 지어야 한다는 철칙이 있다.

배는 그 몸매(곡선)와 화장(도장)과 남성만이 탄다는 점에서 흔히 여자에
비유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순결한 처녀가 이름을 지어야 사고가 없다는 속설이 내려오고
있는 것.

선박명명식의 로프커팅도 얼마전까지는 처녀들만의 몫이었다.

고대 바이킹들이 배를 짓고서 바다의 신에게 처녀를 제물로 바치던 전통
에서 비롯됐다.

따라서 몇십년전까지만 해도 배에 사고가 생길 경우 이름을 지은 처녀나
선박 인도식에 참석한 여자들의 "처녀성"이 의심을 받기도 했다.

항공업계에도 금기가 존재한다.

파리를 잡지 않는게 대표적 예다.

하늘을 나는 파리가 땅으로 떨어지는게 비행기가 추락하는 것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또 여승무원을 CF모델로 쓰지 않는다는 징크스도 있다.

여승무원을 광고모델로 쓰면 비행기에 사고가 난다는 이유없는 "미신"이
내려오고 있어서다.

사고위험이나 우연성 등과 상관없는 이름이나 글자와 관계된 사례들도
많이 있다.

"철(철)"자는 "철"자의 약식표기다.

하지만 철강업체에서는 "철"자를 쓰는 일이 없다.

모두 정식 표기인 "철"자만을 사용하는 것이다.

"철"자는 "돈(금)을 잃는다(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

얼마전 P회사간부가 결재서류에 "철"자를 썼다가 회장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고 전해진다.

색깔과 관련된 금기도 있다.

증권가에선 푸른색은 "악마의 색"으로 통한다.

증권시세판의 주가하락 표시등이 파란색이라서 투자자들의 신경을 날카롭게
하는 것이다.

증권업 종사자들이 푸른색계통의 넥타이를 매지 않는 것은 이같은 이유
에서다.

업계에 떠돌고 있는 금기는 이처럼 "믿거나 말거나"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회사 매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도 있다.

바로 소비자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제품 이름을 지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소형 승용차 "엑센트"(Accent)의 올바른 우리말 표기법은
"액센트"다.

그런데 굳이 "엑센트"로 표기한 것은 "액"이 "액"자와 발음이 같아서다.

중형 승용차인 "소나타"를 "쏘나타" 라고 표기하여 "(사람이 아닌) 소나
타는 차"라는 뉘앙스를 불식시키려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외국어의 어감때문에 한국 기업들이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현대의 영문표기는 Hyundai.

외국인들은 처음 이 표기를 보고 "현다이"로 발음했다.

"다이"는 "die(죽다)"와 발음이 같다.

자동차는 안전성이 중요한 구입요건이다.

따라서 회사의 이름에서 "죽다"라는 단어가 연상되는 현대차 구입을
외국인들은 주저했던 것이다.

현대는 Hyundai의 발음을 "현대이"로 고치기 위해 NBA스타를 모델로 기용
하는 등 엄청난 광고비를 쏟아 부어야 했다.

선경그룹의 영문표기인 Sunkyung은 "젊어서(Young) 가라앉는다(Sunk)"는
뜻으로 오해를 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선경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CI작업에 착수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물론 대부분 사람들은 이러한 금기나 미신적 요소들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징크스를 의식하면서 조심하는 것도 사실이다.

어찌보면 비합리적이랄 수 있는 이런 사례들은 종업원들의 감성에 악영향을
주지 않고자 하는 "또다른 차원의 합리성"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 김주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