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반도체값 하락이 시작될 때까지만해도 "일시적 현상"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낙관론자들까지 이젠 반도체 산업이 하강기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우려를 숨기지 않고 있다.

반도체경기의 특성상 호.불황의 어느 한 단면만을 단정해서 말할수는
없지만 문제는 어두운 그림자가 점점 짙어진다는 점이다.

국내 반도체업체들의 4MD램 및 16M램의 수출가격은 올들어 20~30%가량
내렸다.

서울 용산 전자상가에서는 한달만에 값이 절반이나 떨어졌다고 한다.

값이 계속 내리자 IBM 애플등 해외 반도체수요업체들이 국내 반도체 3사에
지금까지 3개월마다 해오던 가격결정을 1개월단위로 재협상해 조정하자는
요구를 해왔다는 소식이다.

우리측으로서는 바이어들의 요구를 들어줄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도체 경기하강을 점치게 하는 또하나의 지표는 BB율(수주대 출하비율)의
급락세다.

미 반도체산업협회가 최근 발표한 지난 2월중 BB율은 5년만에 최저수준
이었던 1월의 0.93%에서 더 낮아진 0.90%로 나타났다.

쉽게 말해 100달러어치의 반도체가 출하되고 있는데 신규 주문은 90달러
어치 밖에 안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러한 악재에도 불구, 세계 주요 반도체메이커들의 치열한 신.증설
경쟁은 식을줄 모르고 있다.

대형투자를 감당해낼 만큼 국내업체들의 매출이 여전히 호조를 보이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주요국가의 미국내 반도체 투자계획이 발표된 것만 해도 올해부터 98년까지
3년간 150억달러에 이른다.

반도체경기는 일정 주기를 두고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는 "실리콘 사이클"을
갖고 있어 불황기는 투자의 호기라는 것이다.

국내 반도체회사들의 대규모 신.증설계획이 발표될 때마다 일말의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 낙관적인 전망쪽으로 기울지 않을수 없는
것은 반도체가 전체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만 해도 반도체수출은 전년보다 70.3%가 늘어난 221억달러로 전체
수출액 1,251억달러의 17.6%를 차지했다.

만약 반도체 수출이 잘 안된다면 우리경제로서는 심각한 타격이 아닐수
없다.

여기에서 한가지 분명한 것은 경기논쟁과는 관계없이 국내 반도체산업에도
구조변혁이 시급하다는 사실이다.

세계적인 반도체 생산국으로 국내생산량의 90%를 수출하면서 정작 국내에서
필요한 반도체의 69%를 수입에 의존하는 이상한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 우리
반도체산업의 현주소다.

"화려한 명성"은 단순.대량체제의 메모리분야에서 일뿐 고기술.고부가가치
의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아직 걸음마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빚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메모리를 바탕으로 이만큼 양적성장을 했다면 이제는 질적 수준을 고도화
해야 할 때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업체들이 올해 비메모리 매출비중을 10~11%로 높여잡고
5년안에 이를 30%까지 끌어 올린다는 목표아래 비메모리사업 강화에 나선
것은 적절한 투자전략이라고 본다.

이같은 업계의 전략이 반도체산업의 구조개편으로까지 이어져 만년 "반쪽
1등"의 불명예를 씻고 비메모리 분야에서도 제2의 반도체기적을 낳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