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개치마에서 유니섹스"로, "통치마에서 미니스커트"로 지난 1백년간
우리나라 여성들의 모습은 혁명적인 변화를 일궈왔다.

여러명의 첩을 거느리고도 아내를 향해 불호령하는 남편을 하늘처럼
알던 세상이 이제는 단지 성생활을 만족시켜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남편에 대해 아내가 먼저 이혼을 청구하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엄청난 의식과 생활의 변화,그 회오리의 한가운데 서있는 우리 여성들은
그 대담함과 적극성이 지나쳐 때론 오만하게 보일 정도로 한껏 당당하다.

그리고 21세기에도 여성들의 이런 전진은 계속될 것이라는 예측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논리가 세상은 이제 "디지털이다"라는 것이다.

그 세계에선 인간의 감성지수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동기가 될
것이라고 한다.

20세기에 우리들은 "기계화"되었다.

그러나 21세기에 우리들은 지나친 테크놀로지에 짜증을 느낀다.

따라서 기능이 강조되기 보다는 안락함과 편안함을 찾게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들 자신이다.

변화는 언제나 만들어가는 이의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때 막연히 기다릴
것이 아니라 여성 스스로 그런 변화의 주도권을 이끌어낼수 있는 실천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 여성들은 정보통신망의 급속한 변화와 뉴미디어를 통한
뉴에이지의 실현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할 것이다.

주위 여성들로부터 흔히 "나는 기계치야"라는 말을 듣곤 한다.

본인은 기계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스위치 하나로만 조작되는 간단한
것이 아니고선 아무것도 만지고 싶지 않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은 또 대개 주부들이다.

그런 주부들을 겨냥해 가전제품에는 "원터치" "간단한 조작" 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나온다.

이제 세상은 주부들로 하여금 "원터치"에만 만족해서는 안되게끔
바뀌어가고 있다.

한개의 스위치를 누를줄 안다면 두개, 세개의 스위치도 맞게 눌러만
주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한개를 벗어나면 큰일나는 줄 아는 주부들은 좀처럼 두개의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세상은 더이상 "기계치"라는 말을 적당히 낭만이 뒤섞인 호의적인
개념으로 이해해주지 않는데도 그것을 미덕인줄 알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주부들은 곤란하다.

지금 당장 주부가 컴퓨터를 할줄 아는가, 모르는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PC통신을 하는 1백만 가입자중 여성인구가 겨우 20%뿐인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현재 그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듯 보인다.

가장 중요한 사실 한가지는 지금처럼 여전히 그것들이 무시되어도
좋을 것들로 여성 혹은 주부들 사이에서 치부되어 버린다면 21세기에
여성들은 정보화사회의 소외집단이 되어버릴 것이란 사실이다.

지금 우리의 할머니들이 세탁기와 전자레인지를 사드려도 여전히
손빨래를 즐기듯 21세기에 그런 여성들은 집안의 살림조차 감당해내기
어려운 무자격 주부가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과거 남자들만 글을 알던 시대에 그들만 벼슬에 나가고 관직을
차지하며 여성들은 규방에 갇혀 대문밖의 세상에 대해 알수 없었던 것과
같을 것이다.

20세기에 열심히 싸워 대문밖 세상을 구경하고 쓰개치마를 벗어버렸던
그 혁명은 21세기에 다시 밀실 속으로 회귀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여성 모두가 뉴미디어의 광장으로
나가야 한다.

나가보면 그것 역시 단지 한개의 스위치를 더 누르는 것외에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될 것이다.

실천하는 여성만이 감각지수가 우선하는 디지털 사회에서 말 그대로
전진적인 삶을 살아낼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