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이 지난 7일 마련한 기업윤리헌장은 4개월 가까이 끌어온 비자금
파문의 질곡을 벗어던지고 새시대의 국민 여망에 부응하는 기업으로 거듭
나겠다는 재계스스로의 다짐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과 기대를 갖게 한다.

전경련의 윤리헌장 마련은 정경유착의 폐해를 시정하자는 데서 출발한
것이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21세기 기업이 지향해야 할 윤리적 가치를 축약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헌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무, 정당한 이윤창출, 공정한 경쟁, 중소기업
과의 협력, 소비자 권익증진, 환경친화적 경영등 새시대의 기업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8개항에 나누어 담고 있지만 무엇보다 첫번째 조항에서 기업을
단순한 생산주체로만 보지 않고 ''기업시민''이라는 인격적 주체로 파악한
것은 발상의 일대 전환이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기업이 ''기업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국민이 기업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접해줄 수만 있다면 윤리헌장의 기본정신은 저절로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재계관련 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발표됐던 자정선언에 익숙해진
터여서 ''또 선언이냐''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 기업윤리헌장은 지난 80년7월 이른바 신군부의 강압에 못이겨
전경련이 마련했던 ''기업윤리강령''식의 선언적 의미와는 달리 강력한 실천
의지가 뒷받침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이미 각 그룹 차원에서 경영합리화 방안과 기업윤리강령 등의 실천계획이
발표-실천되고 있음은 우리가 보고 있는 그대로다.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헌장이나 강령 선언 등은 법률적 구속력을
갖지 않은 윤리규정에 속하기 때문에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면 공허한 언어의
유희에 불과할 뿐이다.

이제 국민이 바라는건 열가지 다짐보다 한가지 실천이다.

필요한 것은 기업의 자발적 실천의지다.

공정거래 위원장을 장관급으로 격상시키는등 공정위의 대기업 불공정행위
감시기능을 강화시키겠다는 대통령의 약속도 대기업의 자발적 실천의지
없이는 실효를 거두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정부와 국민의 이해와 협력이다.

재계의 윤리헌장이 실천적 행동으로 옮겨지려면 기업의 힘만으론 부족하다.

국민과 정부 모두가 올바른 기업문화 형성을 도와주지 않으면 안된다.

재계와 정부의 관계는 청와대 회동에 이은 재계의 화답으로 이제 가닥이
잡혔다고 할수 있다.

남은 일은 기업에 대한 국민의 신뢰회복이다.

이는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창의와 활력이 넘치는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경영과 기술을 혁신하고
자유시장 경쟁을 통해 건전한 이윤을 창출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환영받은
우량기업이 되는 것만이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기업윤리헌장은 과거의 허물에 집착하는 ''반성문''이
아니라 흐트러진 전력을 가다듬어 새로운 모습으로 21세기를 맞는 ''출사표''
가 되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