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1848년의 2월혁명으로 왕정이 다시 쓰러지고 제2공화국이 수립
되면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이 대통령으로 뽑혔다.

그러나 야심가였던 그는 황제가 되려고 1851년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때 파리에 머물던 칼 마르크스는 대통령임기를 10년으로 연장하겠다는
기치를 내건 이 쿠데타를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희극"이라고 헤겔의
역사관에 빗대어 신랄하게 비꼬았다.

루이는 마르크스의 예견대로 1852년 제위에 올라 나폴레옹3세가 되었다.

그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시대의 영광에 향수를 느끼는 민심에 편승해
국위를 신장해 가던중 1970년 독.불전쟁에서 대패하자 퇴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재위중에 제2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되려고 애섰으나 능력이
그의 삼촌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정치가가 갖춰야 할 자질로 여러가지 특성들을 든다.

용기, 인내심, 정직성, 공정성, 세부문제를 포괄적인 전체와 연결시킬수
있는 사고력, 이상주의적 견식, 확고한 목적에 대한 분별력, 사람들의
마음에 결단성을 심어줄 수 있는 능력 등이다.

그러한 특성들이 결여된 정치가들이 이끌어가는 정치의 세계야 말로
허위로 가득찬 희극의 장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 희극의 장은 루이 나폴레옹의 행각에서 적나라하게 표출되었다.

그가 당초에 시민들에게 한 약속을 깨고 황제가 되었는가 하면 18년동안
이나 장기집권을 했던 것이다.

정치가로서 갖춰야 할 무엇보다도 중요한 정직성을 결여한게 그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그러한 지도자가 이끄는 나라에서는 자연히 권력을 잡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풍토가 자리할 수 밖에 없다.

광복이후 한국정치사를 되돌아 보면 파행적 상황의 연속이 정치의 희극화를
깊이 뿌리내리게 했다.

정치가로서의 자질을 한가지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권력을 쫓아 부유해온
잘못된 풍토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엊그제 코미디언 출신으로서 정계에 발을 디딘 한 국회의원이 한국정치를
"코미디에 불과하다"고 꼬집고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프랑스의 작가 H 발자크가 인간의 현실사를 소설화한 작품에 ''인간희극''
이라는 표제를 붙였듯이 인간의 모든 삶 자체가 희극일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현실을 희극에만 맡겨 둘 수 없다.

정치가 지향하는 이상의 세계로 다가 갈 수 있는 풍토조성이 시급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