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질서가 투명해지고 시장경제에 활력이 붙으려면 힘의 집중을 막아야
한다.

어쩔수 없이 집중된 힘이라면 철저히 감시라도 해야 한다.

권력이든 부든 집중된 힘은 경쟁을 기피하며, 책임을 무시하고 권한만
행사하려 들기 때문이다.

전두환 전대통령이 7년7개월 재임기간중 기업인들로 부터 거둔 자금 총액은
9,500억원대에 이르러 하루 평균 약5억원의 돈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절대권력을 이용하여 기업의 돈을 권력 유지-비호 목적으로 "강탈"하다시피
빼앗았기 때문에 전씨는 12일 반란수괴죄에 뇌물수수 혐의까지 추가해 기소
되었다.

민간기업 대표로 부터 확인된 2,159억원은 전씨가 진술한 7,000억원에
턱없이 적은 액수이기 때문에 나머지 비자금은 대통령의 권한이 미칠수 있는
군이나 정부조직 내부, 또는 공기업으로 부터 조성되었다면 비리의 심각성은
나라가 망하지 않은게 기적일 정도다.

더구나 국보위와 삼청교육대까지 동원하여 정권의 정통성을 조작하기 위한
사정과 숙정, 부정부패 일소는 우리 사회 전체를 냉소주의와 부패 불감증에
빠져들게 하였고, 이제는 도덕성 회복에 국운을 걸고 매달려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되고 있다.

힘의 집중은 힘을 쓰는 조직을 만들며, 범법을 강요하며, 불법을 특권으로
알게 만든다.

대통령의 비자금 조성과 관리에 인기부 국세청 은행감독원 재무부
청와대비서실, 심지어는 경호실까지 나서서 절대권력을 휘둘렀다.

사건과 사고에 책임을 묻는 것이 불이익을 주는 일로 생각토록 만들었으며,
대통령이 돈을 받은 대신 나라가 받아야야 할 세금을 감면해 주었다.

기업의 규모에 따라 비자금 조성 액수가 정해졌으며, 기업들은 납세의무를
지기보다는 정경유착이더 편한 사업방법임을 알아야 했다.

절대권력자가 정부사업, 국책공사 발주, 사업인가와 진입허가에 이르기까지
뇌물 수수액의 크고 작음으로 기업활동에 간여하니 기업소유주나 전문경영인
이 경제원칙을 중히 여길리 없었고 경제운영에 시장원리가 작동될 까닭이
없었다.

절대권력은 시장질서를 파괴하고 자본주의 민주질서를 와해시킨다.

비자금을 만드는데 휘둘러졌던 절대권력이 아직도 온존하고 국민의 감시를
받지 않고 헹해진다면, 우리 경제에서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첫 출발은 힘의
분산이며 절대권력의 감시이다.

첫째 현대인의 의식구조에 맞는 공무원 보수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기회비용이 엄연히 존재하는 시장경제 자본주의 체제에서 유능한 평생관료
에게 무능한 일용 근로자의 봉급을 주는 것은 부패와 비리의 온상이 된다.

둘째 절대권력의 승계과정이 투명하고 공개적인 민주선거에 의해 이루어
져야 하며 돈 안드는 선거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폭력적 정변이 구조적 비리를 낳았던 오욕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시민감시를 강화해야 한다.

셋째 개방된 시장에서 철저히 경쟁하고 국민과 거래 고객에게 최상의
만족을 주려는 떳떳한 기업인들이 당당하게 절대권력의 강압과 회유에 맞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정치에 지배되지 않는 경제를 가꾸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