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과학 세상에 저런 암흑천지가 또 있는가.

큰 물난리가 났던 것까지는 분명한데 그로 인해 좀 있으면 아사와 난민
사태가 날만큼 양도가 절박하냐, 아니냐는 간단한 사실문제를 놓고 온
세계가 다 나서서 떠들어도 그 해답을 찾지 못하는 상대가 바로 북한이다.

그런 나라에 식량원조를 할거냐, 말거냐를 놓고 동족이라는 한국은 말자는
쪽이고 엉뚱하게 북이 원수라던 미-일은 하자는 쪽에 선듯 한것이 무척이나
희한한 요즘의 모양새다.

그러나 문제가 상식과 거리가 멀면 멀수록 오히려 해결책은 아주 상식선
에서 찾을 수도 있다고 본다.

한 마디로 식량 사정이 외부 도움 없이 버티기 힘든가, 아닌가의 여부를
당사자가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그 말을 남들이 믿지 않을 경우 증거를
제시케 하는 길 밖엔 없다.

만일 아무리 사정이 어려워도 구걸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겠다는 결심이라면
대외적으로는 아예 없었던 일로 돌리고 내부에서 비축 군량미를 모두 풀든,
허리띠를 졸라매고 절식을 하는수 밖에 없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

따라서 여당이 정부나 미-일에 대해 북한의 공식 요청, 당사자간 협상,
비방금지 세조건을 마치 3대 원칙처럼 내걸고 한발짝도 물러날수 없다고
버티는 것이 얼른 봐선 상식에 부합되는 처신같다.

그러나 그런 태도의 근원이 6.27 선거패배의 반동작용이라는 점에 이르면
썩개운치 만은 않은 일이다.

그때 투표 사흘전 김영삼 대통령의 "외국쌀을 사서라도 무제한 원조할
용의"표명이 감표 작용을 했다는 분석에 무리는 없다.

15만t을 바치듯 한것도 안 좋은데 외국쌀 얼마든지 살 외화나 국고가 어디
있길래 내돈 쓰듯 말을 앞세우느냐는 반발이었다.

하지만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라듯 거기 지나치게 매달릴
필요는 없다.

그때와 달리 7~8월 폭우로 식량사정이 악화돼 굶주리느냐, 아니냐의
사실문제에서 출발, 사리에 맞게 처리하면 국민도 납득한다.

원수라던 미-일은 식량을 주는데 동족의 기아를 외면한다면 그게 오히려
불만일 수 있다.

따라서 정부-여당이 할 일은 세계적으로 신인도가 높은 국제기구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나서 철저히 현지확인을 하도록 하고, 필요가 확인될
경우 원조식량을 제대로 분배하겠다는 북한 당국의 약속과 배급과정에
기구요원 참여 보장을 받아내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미-일 양국이 모두 국내 정치상 필요로 대북접근을 서두를 개연성은 충분
하고 따라서 국제기구를 통한 우회방법보다 개별 통로를 더 선호할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물량등 원조 내용에서 생색낼 기회는 충분하니만큼 정부가
적극 나선다면 국제기구 활용을 반대할 명분이 없다.

북한이 비축 군량미를 대폭 방출해서라도 난국을 극복할 집단이라면
애초부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저들의 굶주림이 분명히 내다보일 경우 국제사회에 원조를 호소하는
대범성도 필요하다.

확인절차는 꼭 선결돼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