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5.18수사로 세상이 온통 시끄럽다.

모든 것이 혼돈 상태에 빠져든 느낌이다.

기존의 가치체계마저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이 요즈음 전개되고 있는 상황을 군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것은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는다는 명분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
이리라.

역사의 어느 선까지가 잘못되어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다루어지고 있는 문제들의 뿌리는 5.16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찬탈하고 유신체제까지 이어가며 역사를 왜곡시킨 사람들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분명 요즈음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는 정치-경제-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의 근원은 다름아닌 유신에서 찾아야 하고 따라서 아직까지도
우리는 유신의 망령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김찬국 상지대총장(68).

그는 유신의 뮤서운 칼날을 맨몸으로 버텨낸 우리시대의 양심으로 통한다.

1974년 5월 유신체제하에서 긴급조치 1, 4호 위반혐의로 구속돼 군사재판
에서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다음해 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연세대 신학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당시 학생들에게 반정부적 언동을 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물론 김총장은 그것은 조작에 불과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를 연희동 자택으로 찾아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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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양봉진 < 국제부장 > ]]]


-요즈음 어떻게 소일하고 계십니까.

<> 김총장 =주중에는 집사람과 학교(상지대)가 있는 원주에 내려가 학교일
보고 주말에는 애들 보러 서울나들이를 하는 것으로 소일하고 있습니다.

-학교 이외의 사회활동은 안하십니까.

<> 김총장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NCC) 인권위원회의 행사나 모임에는
관심을 가지고 참가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인권운동이 필요한 상황입니까.

<> 김총장 =물론 문민정부들어 우리사회의 인권은 크게 신장됐습니다.

그렇다고 인권문제가 모조리 일소된 것은 아닙니다.

국가보안법이 엄연히 남아 있어 통일문제 등에 연루된 학생들이 자유롭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집단해고 무노동 무임금등 사회적인 논란을 빚고 있는 사안들에
비추어 근로자들의 인권에는 아직도 적지않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 NCC의 인권위원회가 최근 두개의 단체, 즉 외국인근로자 인권운동
단체와 장애근로자 인권운동단체를 선정 시상한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입니다.

-외국인이나 장애근로자 인권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의 인권상황이 개선됐다는 증거일 수도 있는데.

<> 김총장 =그렇다고 봐야 할겁니다.

-5.6공의 뿌리는 결국 유신체제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데.

<> 김총장 =전두환씨와 노태우씨가 역사의 재조명을 받고 있지만,
박정희씨도 살아있다면 법정에서 재판을 받지 않을수 없으리라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가 대통령으로서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했고 그 결과 이만큼 살게 된것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국헌을 문란케 하고, 인권을 무시했으며, 무서운 유신독재를
자행했다는 점에서 역사는 그에 대해 소급 심판을 해야한다고 봅니다.

문제를 제대로 다루려면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세 전직 대통령이 모두 같은
반열에서 취급돼야 한다고 봅니다.

-과거문제에만 얽매여 있을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 김총장 =과거에 얽매여 허송세월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유신시대에는 인혁당 사건등 정부가 사실을 날조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괴롭힌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전두환 시대에 들어서도 삼청교육대등 인권유린은 계속됐습니다.

내가 출옥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인혁당 관련자들은 가차없이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조작된 죄명에 죽어간 것입니다.

그 유가족들의 슬픔과 고통은 아무도 모릅니다.

한번은 대구에 설교차 내려가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서모씨의 가족을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가족은 20년이 다된 지금도 커다란 슬픔을 지니고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다 장성했지만 그 슬픔은 아직도 멍에로 남아 있습니다.

5.18희생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누구도 당사자가 돼보지 않으면 그 슬픔의 정도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이들의 한은 빨리, 그리고 충분히 풀어 줘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역사재조명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 정부의 접근방식에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 김총장 =물론 김영삼 대통령도 3당 합당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비판적인 입장에서 평가될 수 있다고 봅니다.

본인 스스로도 그것을 잘 인식하고 있을 것입니다.

3당 합당을 하던날 당일 김대통령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합당에 대한
의견을 물은 적이 있었지요.

나는 합당을 하라고 표를 찍어준 줄 아느냐고 비판적으로 대꾸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왕 호랑이 굴에 들어갔으니 호랑이를 잘 잡아 "부정적인
공헌"(negative contribution)이라도 잘 하길 바랐습니다.

다행히 김대통령은 기대를 저버리지는 않고 어두웠던 시대의 문제를 제대로
바로 잡아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처음부터 이렇게 강하게 나왔다면 요즈음 같은 역사 재조명작업이
가능했겠는가 하는 의문을 가져 보기도 합니다.

기회주의적이라고 볼수도 있겠지만 하나회를 정리하는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위기와 여건을 조성하느라 노력했을 것이라고 추측해 봅니다.

-물질적인 보상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십니까.

<> 김총장 =어떤 형태로든 매듭이 지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권위원회의 경우 민주유공자 장학회라는 것을 설립, 재작년에 12명,
그리고 작년에 25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했습니다.

비자금 사건에서 보았듯이 이권이나 두려운 사람에게만 돈을 갖다 줄 것이
아니라 아랫 사람,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에게도 돈을 낼 줄 알아야 할
것으로 봅니다.

국가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상은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그 근본적인 이유를 어디에서 찾으십니까.

<> 김총장 =우리는 개인-단체-정부-기업 할것 없이 모두 경제만을
외쳐왔습니다.

특히 경제성장에 따른 과소비가 우리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과시와 안락함만을 추구하는 듯한 느낌까지 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저소득층의 마음속에 들어가 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습니다.

-교육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 김총장 =나는 우리나라 교육이 그런대로 개선되어 나가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앞으로 나란히"식 교육만 받았습니다.

국민학교에만 들어가면 앞으로 나란히 서야 했고 줄이 비뚤어지거나 어느
하나가 줄에서 벗어나면 심하게 질책이 이어지는 식의 교육을 받은
것입니다.

획일적인 일본식 교육을 받은 것이죠.

우리는 선생님앞에 줄을 서서 훈육을 듣지만 미국이나 서구에 가면 선생님
주위에 학생들이 둥그렇게 둘러서서 경청하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단일화된 사회와 다원화된 사회의 차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다원화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젊은이들에게는 분명 희망이 있고 교육방향도 제대로
설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입시방식이 다원화된 형태로 바뀐 것은 그 한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학생운동에도 변화가 많은것으로 여겨지는데.

<> 김총장 =우리나라 학생운동은 군사정권이후 경직됐던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루탄에 눈물 흘리고 목덜미를 잡혀 끌려 가더라도 학생들의
목소리를 집약, 의사를 표현함으로써 우리사회에 기여한바 크다고 봅니다.

이제 문민정부 들어서서는 그러한 경직성도 많이 사라졌으며 운동방식도
크게 개선됐다고 봅니다.

-북한의 인권은 최악이라는 보도가 많은데.

<> 김총장 =북한의 인권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우선 북한이 개방된 사회가
될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도 중요하지만 종교단체등 민간차원의 접촉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선거의 해입니다.

누구든 공식 석상에서는 지역감정을 타파해야 한다고 하면서 실제로 표를
찍을 때는 지역감정에 기초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은데.

<> 김총장 =어느 나라나 지역감정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역감정은 정치인들에 의해 부추겨진 면이 적지
않다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와 공동번영을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지역감정을 이용하려
들지 않고 유권자들도 이에 이용당하지 않겠다는 의식을 가져야 할 때라고
봅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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