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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권력을 맞바꾸는 것을 당영시하는 우리사회의 의식과 관행이
사라지지 않은한 한국자본주의는 더이상 발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돈이나 권력을 가진 자라도 법위에 설 수는 없다는 법치주의의 실현을
통해서만 이같은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봅니다.

법치주의를 구현하기 위해는 현실에 맞는 법을 제정해 법이 공신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경제신문사와 LG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지난달 하순 LG경제연구원
대회의실에서 ''정치와 경제의 새로운 관계정립''이란 주제로 주최한 토론회
에서 안병준 연세대 교수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법치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며 이같이 역설했다.

이윤호 LG경제연구원대표이사 사회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는 안교수를 비롯
김동건 서울대 교수 서상목 국회의원(신한국당) 손병두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내용을 요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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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한 국가의 정치와 경제체제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경제발전은 정치적요인들에 의지되고 있으며 경제적 변수들은 정치적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부류노프레이라는 학자가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비자금 파문등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정치와 경제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 나가야 할지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됩니다.

먼저 우리나라의 정치와 경제관계의 문제점은 어떤 것이며 또 이같은
문제점의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해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손부원장 =그동안 우리나라는 국가주도의 경제개발을 추진해왔기 때문에
권한이 정부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었고 이에따라 부패도 많았습니다.

이같은 정경유착이라는 잘못된 관행은 우리 역사의 산물이지만 역시
1차적인 원인은 정치권의 부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은 정치권에 순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부가 경영영역을 규제와 부패의 높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대형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경우 형식상으로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프로젝트라 하더라도 실제로는 대통령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부패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손의원 =선진국에서는 정치권이 경제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대통령이 정치권을 막아내면서 경제정책을
주도하는 소위 ''개발독재''가 행해졌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행정부가 경제정책을 주도했다는 의미지요.

노전대통령만 해도 재임당시 ''물통령''소리를 들을 만큼 전임대통령에 비해
힘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천억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
운영에 있어 권한이 대통령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국의 경우 대기업들이 클린턴 대통령에게 그정도의 돈을 갖다줄
인센티브가 없습니다.

물론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대기업정책도 달라졌고 개발도상국도 끝이
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 노사관계등 과거 한국자본주의를 지탱해 왔던 패러다임이
무너지면서 새로운 변수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현재의 어려움은 이같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교수 =대기업에 경제력이 집중돼 있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가장
큰 국내 대기업집단이라도 일본의 미쓰비시 등에 비하면 10분의1 규모도
안됩니다.

이점만 봐도 이윤추구를 위해 규모를 키우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안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을 갖다주고 특혜를 얻어 성장하려는 것은 곤란합니다.

<>김교수 =이번 비자금 사건만해도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 또
공직자 재산공개등 제도적 장치가 자리잡는 과정에서 터진 것입니다.

이처럼 제도는 앞서가는데 정치권이나 경제계의 의식과 관행은 이를
따라기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서의원 =저는 오히려 여려가지가 바뀌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김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한국병"을 치유해야 한다고 지적했는데 바로
그 한국병이 부패입니다.

그러나 지구상에 부패문제가 없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일본이나 이탈리아도 최근까지 부정부패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지 았습니까.

한 외국저널은 이번 비자금 사건을 "진보의 신호"로 평가하더군요.

이번 사건이 우리나라가 부패구조를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의미로 평가한 것입니다.

적어도 부패척결 노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측면에서는 우리나라가
일본이나 이탈리아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이지요.

<>김교수 =민주주의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정당 기업 할것 없이 대부분이 일인 독재체제로 되어있습니다.

문민정부라고 하지만 아직도 청와대의 결정 한마디에 기업이 좌우될때가
많습니다.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제도가 바뀌어도 소용이 없다고 봅니다.

<>사회 =결국 우리가 자유시장 경제를 추구하고 있지만 정치와 경제
양자간의 관계가 아직 성숙단계에 이르지 못한데서 정경유착과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는데는 모두 동의하는 것 같군요.

하지만 지금까지 주로 정치쪽의 문제점만 부각된 것 같습니다.

경제쪽, 특히 대기업들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서의원 =경제력이 대기업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는 것도 큰 문제
입니다.

미국의 경우 정보화 사회에 들어서면서 대기업보다는 작은회사들이
기민하게 움직이고 변화에도 효과적으로 적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신기술개발에 성공한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거꾸로 대기업은 계속 잘되고 중소기업은 계속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강요하지 않더라고 대기업 스스로 중소기업에 기술.수출지원을
하는 등 중소기업과의 공존을 모색해야 할텐데 우리나라 대기업의 경우는
오히려 중소기업이 어떤 것을 해서 잘된다고 하면 그 분야까지 차지해
버리곤 합니다.

<>김교수 =모든 잘못은 정치에 있고 기업은 희생자라는 주장이 있지만
기업이 정치가에게 돈을 줄 때는 반대급부로 뭔가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때문에 무조건 죄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곤란하지요.

객관적으로 볼때 기업들이 법규정을 어긴 것만은 틀림없지 않습니까.

<>사회 =이쯤에서 정경유착의 원인을 정리해 보는 것이 좋을듯 합니다.

먼저 권력의 집중현상이 지나쳐 간섭과 규제가 너무 많다는 점입니다.

둘때로는 정당이나 정치인의 돈에 대한 수요가 너무 많다는 점도 중요한
원인입니다.

셋째로는 권력을 통한 치부를 너무 당연히 합니다.

넷째 유권자의 정치의식수준이 낮아서 옳고 그른 것보다는 돈이나 혈연
학연 지연 등에 쉽게 좌우되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봅니다.

다섯째 정책결정의 투명성이 부족한데다 행정능력도 떨어집니다.

여섯째 공직자의 급여수준이 너무 낮다는 점도 한 원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겠습니까.

<>서의원 =먼저 제도적으로 규제완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동안 규제완화를 표방하긴 했지만 감사원보고서를 보면 실제 개선된
것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규제를 해소한다고 해놓고 오히려 다른쪽에 규제를 강화해 실제로 집행
단계에서 보면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는 권한을 분산하는 것도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내각제까지 가지 않고도 총리에게 더 큰 권한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주제발표에서 지적된 것처럼 기업의 소유와 경영분리를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경제효율면에서는 소유.경영 분리가 더 나을 수도 있고 그렇지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경제정의라는 면에서는 분명히 소유와 경영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이 문제를 인위적으로 건드려서는 안됩니다.

기업 스스로에 맡겨 순리대로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결국 정경유착의 문제는 정부규제완화와 경제력집중해소를
통해 치유할 수 있다는 말씀인데요.

<>손부원장 =각종 정부규제의 완화를 통해 경쟁을 가속화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기업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고 봅니다.

소유.경영 분리를 도덕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봐서는 곤란합니다.

물론 현재 상속세만 내면 재산상속이 가능하고 대부분 기업경영자들이
대주주이기 때문에 상속을 통해 경영권까지 이양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만 결국 기업이 전문경영인을 택하든 소유.경영체제를 유지하든
그것은 기업의 책임하에 이뤄져야 합니다.

특히 과거와 같은 분위기에서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전문경영인이 경영을
맡더라도 똑 같이 행동했을 것입니다.

이같이 행동하지 않을 경우 다른 기업에 비해 불리해지기 때문에
전문경영인의 경우 오히려 더 했을 수도 있습니다.

<>안교수 =소유와 경영이 분리 되면 기업이 돈을 내놓더라도 내놓는
양태가 달라지게 됩니다.

이사회에 보고를 해야하고 기록을 남겨야 할 테니까 말이죠.전문경영인의
경우 자기책임이 따르는 일이라 정해진 룰을 따를 것입니다.

<>손부원장 =소유경영과 전문경영중 어느쪽이 더 바람직한지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할 경우 소유경영인이 의사결정을 더
효과적으로 할수 있다고 봅니다.

과거 삼성이 반도체사업을 시작할 당시 고이병철회장이 과감한 결단을
내려 수년동안의 적자를 감수했던 것이 단적인 예입니다.

또 소유.경영 분리로 부패를 막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일본에서 일어났던 록히드 사건의 경우 세계적인 회사로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있어던 록히드사였지만 부패사건에 휘말렸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소유경영자냐, 아니면 전문경영자냐 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교수 =한번도 시켜보지 않고 전문경영인이 결단력이 떨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미국 기업들의 경우 최고경영자는 지분을 겨우 1~2%밖에 가지고 있지
않지만 과감하게 대형투자도 결정합니다.

물론 소유경영과 전문경영 어느쪽이 효율적인지를 논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소유경영자 체제로 한국경제가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안교수 =중국자본주의도 현금을 많이쓰고 기록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이 역시 소유경영자 중심의 가족자본주의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같은 시스템이 정보화사회에서 얼마나 더 지탱할 수 있을지가 의문
입니다.

미국이나 일본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기업들의 경우 이사회가 공개돼
있어 이사회의 회의기록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의사결정과정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고
소유경영자의 경우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에게도 보고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 부패를 가져오는 한 요인이 된다고 봅니다.

<>사회 =우리나라 기업들도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하고서는 해외에
진출해 성공을 거둘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 기업들도 변신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 비자금 사건이 그같은 노력에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와 경제의 관계를 바람직하게 설정할 수 있는 방법쪽으로 논의를 다시
옮겨야 할 것 같은데요.

<>김교수 =우리나라도 대통령이 아니라 행정관료가 강해져야 한다고
봅니다.

일본의 대장성이 강하듯이 말이죠.

물론 모든것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틀림없지만 지금단계에서는 변화를
촉진시키기 위해서 제도적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안교수 =모든 경우에 통용되는 원칙은 돈과 권력을 바꿀 수 있는
상황이 빨리 사라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달리말하면 권력없이도 사회에서 존경받고 권력이상으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많아야 하겠습니다.

제도적으로 정경유착을 막아야 하지만 우리사회가 너무 권력지향적이어서
이것도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돈과 권력의 연결고리를 가장 단시일내에 끊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법치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권력과 돈을 가진 자라도 법위에 설수 없다는 것만 분명해지면 문제는
조금씩 풀리리라고 봅니다.

<>손부원장 =법집행 당사자의 법을 수호하겠다는 의지도 문제입니다.

<>김교수 =정치자금법을 통해 법인명의로는 정치인이나 정당에 기부할
수 없도록 하고 개인이름으로만 가능토록 해야합니다.

금액도 상한선을 정해야 겠지요.

<>서의원 =그렇지만 제도못지 않게 의식개혁이 뒷받침돼야만 우리경제가
두바퀴로 설 수 있다고 봅니다.

<>손부원장 =정경유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법치주의와 윤리.도덕적
관행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후자가 너무 약한 것 같습니다.

<>사회 =결국 정부가 할 일과 민간이 해결할 일을 엄격히 구분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물론 시장원리를 활용한다는 대원칙하에서만 이같은 구분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통제기능을 과감하게 시장에 넘겨줘야 합니다.

[ 정리 = 김용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