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가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은 결국 애당초부터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개념의 모호성과 방향부재"의 탓으로 확인되고 있다.

거창한 제목에 비해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가 분명치 않았다는 얘기다.

세계화를 외치면서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는 지적이
그 다음을 차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업과 국민등 경제주체들의 의지가 부족했기때문이라는 답변은 8.3%에
불과했다.

이 결과는 향후 세계화 추진에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으로 여겨져 주목된다.

반면 세계화가 성공적이라는 응답자(전체의 11.1%)들이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국민들의 관심및 의식수준이 향상"이 73.6%로 가장
많았다.

또 세계속에서 우리의 정치.경제.외교적 역량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15%였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경제력 향상, WTO(세계무역기구)사무차장 피선,
UN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등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때문으로 보인다.

결국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한 일부도 정부가 셰계화를 잘 추진해서가 아니라
경제력이 커진 결과라고 평가한 셈이다.

향후 세계화 추진때 역점을 둬야할 부분도 이번 조사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세계화가 가장 부진한 분야를 묻는 질문에서 응답자중 56.4%가 정치분야를
꼽았다.

여기에는 비자금 파문과 5.18특별법 제정과 관련한 정국불안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응답자들은 이밖에 행정(11.8%) 교육(10.7%) 법질서(8.9%)의 순으로
세계화가 안된 분야를 지목했다.

외국기업인들중에서는 법질서의 세계화가 부진했다는 응답자가 21.2%에
달해 눈길을 끌었다.

응답자들의 이같은 시각은 세계화 성공을 위한 과제와도 맥을 같이 했다.

가장 시급하게 실천해야할 과제로 행정부를 포함한 정치권을 개혁이 지적
됐다.

과감한 제도개혁과 정부규제완화가 그 뒤를 이었다.

국제경쟁력 강화나 전문인력 양성등 당초 가장 시급한 사안으로 지적돼
왔던 과제들은 오히려 지적한 응답자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다시말해 기본적인 방향이 애매하고 행정규제 완화등 기초적인 문제마저
해결되지 않아 실질적인 문제는 논의할 겨를도 아니라고 혹평하고 있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세계화와 경제규모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끌고 있다.

세계화가 잘된 나라에 대해 응답자들의 34.1%가 미국을 꼽았다.

그 다음은 싱가폴 스위스 홍콩등의 순이었는데 이들은 경제규모가 더 큰
일본(6.5%) 독일(5.6%) 캐나다(5.4%)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아 세계화와
경제규모는 다른 차원에서 인식되고 있음을 입증했다.

< 박기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