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평균 경제성장률이 9.3%로 예상될 정도로 호황을 누린 가운데 경기
양극화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자 정부도 대기업에 납품대금의 현금결제를
촉구하는 등 중소기업 지원에 발벗고 나섰다.

그러나 잇따른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대책에도 불구하고 인력난과 자금난
이라는 고질적인 어려움은 여전해 올해들어 10월말 현재 부도업체수가 1만
1,500개를 넘었다.

견디다 못한 중소기업계가 자구책 마련을 선언하고 나섰다.

보도에 따르면 박상희 중소기협 중앙회장은 현재 특별회계 형태로 운용중인
중소기업 공제기금 3,000여억원을 기협이 정부로부터 인수한 뒤 지방은행을
합병해 중소기업 전담은행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본지 12월26일자 11면
머릿기사).

그러나 기협의 이같은 야심적인 계획은 땅에 떨어진 중소기업들의 사기를
북돋울지는 모르지만 두가지 이유에서 고질적인 자금난을 덜어주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우선 중소기업의 자금난은 상당부분 뒤떨어진 국내 금융시장의 구조적인
결함 때문이지 기협소유의 은행이 있고 없는 것에 좌우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지적해야 겠다.

지금도 중소기업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중소기업은행 동남은행 대동은행
등이 영업중이며 진성어음 할인이 정책금융 차원에서 강조되고 있다.

기협은 직접 금융업무를 할경우 신용과 기술위주로 과감한 대출을 통해
담보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자금난해소에 적극 기여하겠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 분야도 이미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용보증기금이 설립돼 있다.

물론 기존의 관련 금융기관들이 100% 제기능을 다하고 있느냐에는 의문이
있을수 있지만 새로 중소기업 전담은행을 만든다고 형편이 크게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은행 대출때 "꺾기"를 당하는 것은 금리규제와 왜곡된 자금흐름 때문이며
중소기업만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정부가 나서서 중소기업지원을 촉구하고 중소기업전담 금융기관이
많아도 금융시장 구조가 낙후돼 있고 중소기업의 담보와 신용이 부족하다면
금융지원은 곤란할 수 밖에 없다.

또한 기존의 신용보증기금이 해마다 막대한 손실을 보는 형편인데 중소기업
전담은행도 중소기업 지원에 앞서 금융기관으로서 건전경영에 주력해야
한다.

또 한가지는 중소기업의 자생력강화 없이 자금살포식의 지원정책에는 한계
가 뚜렷하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이 어렵다고 하지만 수요기반이 튼튼하고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으며 인력양성에 힘쓰는 일부 중소기업들은 별 문제가 없다.

따라서 예산지원에 한계가 있어 지키지도 못할 전시성정책만 남발하지 말고
제품규격의 표준화및 부품공용화, 기술인력의 공동이용, 수송및 보관의 공동
추진 등을 통해 중소기업의 자생력부터 강화시키는 일이 시급하다고 하겠다.

결국 금융시장을 자율화하고 개방하며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강화시키지
않고는 기협의 청사진도 의욕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