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훈한 토담집에서 모닥불과 함께 차 한잔을 마시던 추억이 생각나는
계절.

개인주의가 팽배해지고 자칫 이웃에 대한 무관심이 우리의 사회를
썰렁하게 만들기 쉬운 이시대에 우리 직장은 CROSS CULTURE 를 넘어선
곳이다.

미국대산관은 한국근무자에게 있어 이방인의 지역이 아닌 한국 영토안
임에도 불구하고 미국문화가 자리잡고 있는 탓인지 인간관계를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유지하는 데는 다소 부담스러운 특수한 곳이라고 할수 있다.

남자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한국 직장남성들이 퇴근후에 소주한잔을
기울이는 훈훈한 한국적인 분위기를 맛보기도 힘들고 여직원 역시
사사로운 집안이야기며 회사의 뜬소문에 귀를 기울이거나 하는 따위의
느긋한 맛이없다.

그래서 개인주의 사고방식이 서구와 같이 뚜렷한 이 직장에서 50년대
출생의 같은 또래 여성들이 모임을 갖게 되었다.

이름하여 FEW(Fifth Embassy Women).

이곳에 근무하는 여성들의 프라이드는 다른 직장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본인들 스스로도 나름데로 케리어우먼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있는데다
기혼자의 경우 그들의 부군이 사회적으로 제법 높은 지위에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엔 서로의 자존심을 내세우며 먼저 타인에게 말을
걸기보다 걸어오는 질문에 소극적으로 대답해주는 풍토가 있었다.

그러나 이 모임을 통해 서로를 알게되기 시작하면서 사소한 개인일도
서로 상의하고 도와주며 희노애락을 같이 나눌수 있는 관계로 발전
되었다.

이모임은 1990년에 발족하여 현재 미국으로 건너간 조양인씨가
제1대회장직을 맡아 모임의 밑거름을 뿌렸다.

그후 언제나 대화의 중심에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임정순씨
매사에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이영화씨, 그리고 김남숙 라명수 김정숙씨에
이어 지금은 본인이 회장직을 맡고 있다.

이밖에도 22명의 회원들과 지금은 퇴직하여 미국 싱가폴 영국등 해외에서
생활하고 있는 명예회원들이 항상 따사로운 정감을 나누고 있다.

특히 지난 92년5월 장흥 유원지에서 가진 토담집의 대화는 우리들의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때 우리들은 광릉 수목원으로 가기로 했으나 막상 가보니 수목원이
쉬는날 이어서 장흥 유원지로 행선지를 바꾸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들은 한국속의 이방지대에 떨어진 외로운 사람이 아니라
조그만 일에도 감탄하고 서로 인정을 나누려는 다정다감한 한국
여인네임을 자각하고 있다.

우리들의 모임이 활기를 띄기 시작하면서 각 과끼리 단절되어 있던
연대관계가 회복되고 한국인 남자들도 같이 어울리며 같은 동포로서의
유대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앞으로 이곳 대사관안에 근무하는 한국인끼리 합동 야유회나회식을
함께해보자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