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 경북대 교수 / 경제학 >

한국경제는 이제 생산요소(노동자본토지등)의 투입증가에 의한 성장의
시대에서 주어진 요소의 효율성증가(주로 기술혁신)에 의한 성장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따라서 널리 "기술입국론"이 거론되고 있고 기술입국의 당위에 대해서는
국민적동의가 형성되어 있다.

문제는 국가의 기술혁신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하느냐에 있다.

말하자면 슘페터적 기술혁신의 세계에서 프리만적 국가기술혁신체제의
구축의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WTO체제하에 기술라운드(TR)가 거론되고 있는중에 최근 통상산업부의
산업기술개발5개년계획과 기술하부구조확충5개년계획(안)이 발표되었고
거의 같은 무렵에 OECD의 한국과학기술정책에 관한 평가보고서가 발표되면서
우리는 새삼 한국형 기술혁신시스템 구축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이제 이문제를 정면에서 함께 다루어 보아야 할것 같다.

우선 첫째로 과학기술정책을 둘러싼 정부각부처간의 업무영역의 중복과
거기에서 생기는 상대적 혼란을 종합하고 조정하여 효율적인 정책분업
시스템을 구축하는 문제가 있다.

이문제는 실은 현대기술혁신의 특징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현대기술혁신은 생산현장기술과 R&D기술과 기초과학가의 거리가 축소되고
경제가 허물어져 상대적으로 경계없는(borderless) 혁신세제로 접근해 가고
있다.

그결과 대학쪽에서 산학협동을 지향하고 TBI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반대로 기업쪽에서 연구소를 설치하고 사내대학을 설립하며 일반 대학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대학에서 기업에의 접근과 기업에서 대학에의 접근이 맞물려 일정하게
경계축소현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기술후진국의 특징은 기존 과학과 산업기술이 따로따로 놀면서 서로
연계가 약한 분절(Disarticulated)형을 이루고 있다는데 있다.

그러나 이제 기술혁신주도형성장을 추구하면서 기초과학과 산업기술 혹은
대학과 기업간의 거리가 축소되고 연계가 강화되면서 연절형을 이루어가는
과정에 각부처간의 업무의 경계가 다소 애매해지고 중복되는 현상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정보통신혁명이 맞물려 정보통신기술개발정책과의 중복도 겹치게
되는 것이다.

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종합과학기술심의회"의 기능을 보아 강화하고
각부처의 각종 기술개발계획을 신경제장기계획의 틀속에 종합조정하는
노력과 함께 각부처의 개별기술관련계획에 처음부터 다른부처의 관련담당관
의 참여를 확대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최종수준에서 종합조정하는데에 그치지 않고 그이전의 계획수준
에서도 상호조정하는 형태를 갖추어 나가는 것이다.

그런점에서 이번 통산부의 산업기술발전심의회에 재경원 교육부 과기처
정보통신부의 담당관을 참여시킨 것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각수준에서의 유연한 조정체제를 종합적 조정체제로 연결시키면서 그간에
유연한 정책분업체계를 구축해 나가도록 해야 할것이다.

통산부의 기술개발계획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한 수요위주의 계획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전체적 기술정책분업체계속의 분업형으로
다듬어져야 할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국가 기술혁신시스템은 내발형과 외발형의 복합형으로 구축해야
할것 같다.

우리는 한국의 과학기술수준으로 보아 선진국의 기존의 기술혁신성과및
기존의 산업기술에 대해서는 후발성이익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과학기술혁신에 대해서는 선발성이익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복합적 접근전략을 강조한바 있다.

이경우 후발성이익을 살리는 경우 일종의 외발형 전략이다.

가령 생산기반기술은 대학이나 연구소가 공급하기가 어려운 것이고 엔고에
시달리는 일본기업과 제휴하여 이전받는 전략이 적극 모색됨직하다.

또한 기술분야에 있어서의 선발성 이익을 살리기 위해서도 외국과의 R&D의
전략적제휴와 외국대학의 기초과학연구성과를 적극 활용하는 중간접목전략
등의 외발형혁신전략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외국대기업의 R&D그로벌케이션은 한국의 외발형기술혁신의
적극적 조건이 된다.

필자가 얼마전 일본의 한기업인들 모임에서 기술혁신에 관한 강연을 마치자
한기업인이 일어나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국의 기술을 모방하되 모방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기술"이라고 지적하여 폭소가 벌어진적이 있다.

문제는 기술혁신의 내발형과 외발형이 상호 보완관계를 갖게 하는 것이다.

셋째로 국가의 메크로과기정책과 마이클로한 생산현장의 기술축적의 조화
체계가 필요하다.

기술혁신에는 근본적인 돌파형 혁신과 점진적인 누적형혁신이 있고 이중
누적형혁신은 주로 생산현장에서 노동자의 숙련형성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일본의 기술혁신의 대부분은 생산현장에서 노동자의 숙련형성을 통하여
이루어졌다고 한다.

노동자는 기술혁신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이다.

그런점에서 기술혁신체제는 산학관노의 사민체제로 구축되여야 할것이다.

현대민주주의에 있어서 노동자는 프로레타리아드 계급이 아니라 신시민이며
기술혁신의 주체이기도 하다.

한기업가는 현장기술의 혁신을 위해서는 사장이 사장실을 없애고 작업장
으로 가서 동참하면 된다고 역설한 바있다.

말하자면 화이트칼라나 블루칼라가 아니라 메탈칼라가 생산기술혁신의
주체인 셈이다.

아울러 메크로아 마이크로의 중간레벨로 지역의 산학관협력에 의한 지역별
산학협동단지및 테크로파크 조성 사업도 매우 중요하다.

다만 지역내 이니쉬어 티브경쟁이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중간레벨에
있어서의 유연한 "경쟁적협조"체계의 구축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오늘날 네트워크형 기술혁신시스템의 등장을 보며 더욱 그러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