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그룹의 초고속 성장을 둘러싼 미스테리의 꼬리가 잡혔다.

의혹의 해답은 노태우전태통령의 비자금이었다.

노전태통령의 비자금 3백억원을 한보그룹 명의로 지난 93년 9월 실명전환한
것으로 밝혀짐으로써 한보의 "마르지 않는 자금원"에 관한 수수께기의
실마리가 하나둘씩 풀려 가고 있다.

지난 91년 수서사건으로 그룹 공중분해 위기를 겪었던 한보는 최근 2-3년간
공격적인 사세확장을 벌이면서 자금조달에 대한 의혹이 끊이지 않고 제기
됐었다.

한보는 지난해 7월 67억원을 주고 상아제약을 사들인데 이어 삼화신용금고
를 인수했고 정보통신과 케이블TV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올들어선 국내 도급순위 33위의 유원건설을 인수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총
1조8천억원 정도가 투입된 아산만 철강단지 1단계 공사를 완료해 자산기준
국내 18위의 대기업그룹으로 자리를 잡았다.

최근엔 우성타이어 인수를 추진하기도 했다.

이같이 지난 93년이후 기업확장에 들어간 돈만 대충 계산해도 2조원을
넘어선다.

과연 이런 엄청난 자금을 어떻게 조달했을까는 재계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자금원에 대한 한보의 공식설명은 "신용을 바탕으로한 여신"과 "부동산을
이용한 조달"이었다.

철강단지 투자자금의 경우 산업은행등의 융자로 7천-8천억원을 끌어썼고
작년에 발행한 사채 3천억원, 해외전환사채(CB) 5천억원등으로 충당했다는
것이다.

정회장은 또 최근 모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도 처분해 자금을
조달할수 있는 부동산이 1조원어치가 된다"며 자금조달에 관한한 자신감을
보였다.

한보의 이같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 그룹의 자금조달능력은 언제나 의혹의
대상이었다.

특히 한보철강등 2-3개사를 제외하고는 25개에 달하는 대부분의 계열사가
"구멍가게"수준 불과해 특별한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였다.

실제로 지난해 계열사 재무제표를 분석해보면 한보철강과 (주)한보가
각각 4백93억원과 3백9억의 순이익을 내 그룹 총이익은 9백64억원이었다.

그러나 이중에서도 7백71억원은 한보철강이 부산공장부지와 건물을 계열사
에 팔아 챙긴 내부거래이익이어서 실제 이익은 1백93억원에 그쳤다.

이처럼 계열사들의 이익기반이 취약했음에도 한보는 수조원의 투자계획을
추진했던 셈이다.

그 흑막은 바로 노씨의 비자금이었다는게 검찰조사결과 이번에 밝혀진
것이다.

이제 관심은 한보그룹의 앞날에 모아진다.

이번 비자금 연루는 수서사건이후그룹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만큼을 폭발력
을 갖고 있어서다.

게다가 총 2조원가량이 추가 투입되는 아산만 철강공장의 2단계 공사가
예정돼 있고 유원건설도 아직 인수절차가 끝나지 않은등 벌려놓은 사업도
만만치 않아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금융계는 일단 한보의 유원건설 최종인수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을 하고
있다.

한보는 제일은행과 유원건설인수를 "선인수 후정산"의 방법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따라서 11월중 끝나는 자산실사이후 한보는 제일은행측에 인수대금을
지불키로 돼있다.

그러나 한보가 이번 비자금 파문으로 흔들릴 경우 최종 인수작업은 차질을
빚을게 분명하다는 얘기다.

사태진전에 따라서는 당진철강공장 2단계 공사의 무산뿐아니라 제1공장의
가동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수서사건이후 극적인 재기 드라마를 연출했던 한보그룹은 이번 비자금
사태로 비극적인 막을 내릴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차병석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