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호 <한양대교수.경제학>

우리 누구라도 지나갈수 있었던 큰다리가 내려앉고, 가족과 더불어 쉬어
찾아갈수 있었던 일류백화점이 폭삭 무너지고, 마침내는 우리가 뽑은
5년간의 최고통치자가 스스로 부정을 TV화면을 통해 자백하고 있으니
온국민은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은 암담한 심정이다.

도대체 나라가 있느냐, 또 나라가 있다면 이따위꼴의 나라가 또 어디에
있겠느냐하고 온국민은 통곡하는 심정이다.

노태우대통령후보를 지원하는 연설도 했고 정책대안을 구상하고
건의한적도 있는 나 개인으로서는 허탈한 마음을 형용할수조차 없다.

또 인생가치보다 경제발전을 최고의 가치처럼 역설하고 후진에게 가르쳐온
나 자신이 초라하고 부끄럽기조차 하다.

그러나 이로인해 국민경제가 좌초할수도 없으며 또 무한경쟁시대에 우리의
경쟁력이 낙후되어서도 아니되겠다.

선고께서 항상 나에게 일러주시기를 "답답하면 멀리보고 급하면 천천히
생각하라"는 말씀이 상기된다.

온국민은 우리를 압도하는 좌절감과 분노하는 감정에서 빨리 초월하여
이를 계기로 이땅에서 다시는 이러한 불행한 일들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사회적 제도적 개혁을 설계해야할 때이다.

금융실명제 토지실명제 공직자재산공개등 현정권이 그동안 추진해온 많은
개혁을 높이 평가해야 할것이나, 앞으로 2년여개월이후 정권이양이 아니라
이권이양이 되지않게 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해야할 개혁이 많이 남아있다.

부정과 부패의 원천은 권력의 집중과 비밀운영에서 발생한다.

이런 차원에서 몇가지 제언을 한다면 먼저 정부가 갖고있는 권력을 완화
하고 분산해야 하는 개혁이 있어야 한다.

첫째 인.허가제도를 혁명적으로 폐지 내지 완화해야 한다.

둘째 공직자가 가지고 있는 많은 재량권의 대부분을 준칙(rule)으로
운영토록 바꾸어야 한다.

홍콩에서 근무하다 귀국한 한 후배의 말에 의하면 홍콩에서는 관청에
출입해야될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전화로 문의하고 팩스나 우편으로도 거의 모든 행정을 신속히 처리한다고
했다.

셋째 정보의 공유화와 공시제도의 확대 강화이다.

정보의 독점은 부정과 부패를 낳게 되어있다.

국가기밀이 아닌 모든정보는 공유화되고 기관운영도 국정감사나 감독기관
뿐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공시되어야 한다.

남이 모른다고 생각하면 부정할 약점을 갖고있는 것이인간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넷째 김영삼정권은 과거의 부정을 파헤치는 쇄신은 잘하고 있으나 현행
하고 있는 부정에 대해서는 잘하고 있지 못하다는 여론들이다.

얼마전에 각계 각처에 근무하고 있는 제자들과 회식중에 나온 이야기들다.

정부부처나 구청 세무서 금융기관은 고사하고 심지어 검찰 법원에 이르기
까지 아직도 봉투를 돌리지 않으면 신속히 처리되는 일이 없다고들 했다.

다음으로 기업및 산업조직에 대한 정부정책의 개혁이다.

한국자본주의처럼 경제력이 집중되어 있는 사회는 2차대전이후 다른 어떤
사회에서도 볼수없다.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가 엄연히 존재하고 따라서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대형화나 다원화(Diversification)도 충분히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유의 집중이 권력의 집중을 배태하고 그결과 현행기업의
이사회는 통과위원회로 전락되고 있다.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권부에 헌납할수 있는 회장이 한국자본주의 이외의
어느사회에서 존재할수 있겠는가하고 묻고 싶다.

이는 우리나라의 기업이사회가 유명무실하고 모든 권력이 이른바 회장
1인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차제에 기업이사회의 책임과 의무 또 기능에 대한 제도적 개혁작업을
해야한다.

또 이사회의 구성에 대해서도 참신한 발상이 있어야한다.

회장에 대한 충성심 위주가 아니라 사계의 전문가나 소액주주의 대표는
물론 채권자인 금융기관의 대표도 포함되어야 한다.

끝으로 정부는 이 역사적개혁을 정부단독으로 추진한다고 해서는 결코
성공할수 없을 것이다.

민주사회의 개혁과 발전은 민주시민의 적극적 참여 없이는 그 결실을
거둘수 없다.

시민단체 종교단체 문화단체 청년단체 학생단체는 물론 모든 시민이
동참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범세계화와 무한경쟁에 대응하는 요체는 여러경제단위간에 국내적으로는
물론 국제적으로 협력을 확대하고 전략적 제휴 제고및 또 네트워크화의
확대이다.

이는 곧 서로 신뢰하는 사회의 구축에서만 가능하다.

다가오는 지식 정보사회에서는 팀 워크가 중요하고 상호의존관계가 심화
된다.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국민적 충격을 우리는 전화위복의 전기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민족의 반만년역사의 "한"인 선진국 진입에의 일대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깨끗한 정치,효율적이고 명백한 행정,창의적이면서 대와 소가 협력하고
노와 사가 신뢰하면서 네트 워크해야 하는 기업문화를 창달해야 한다.

이 모든것은 정직하고 질서있고 서로 신뢰할수 있는 한국인상을 우리
모두가 만들어가야 한다.

큰 도적에 돌만 던질것이 아니라 우리 이웃에서, 우리 주변에서 작은
도적이 생겨나지 못하게 우리환경을 정화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