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파아란 하늘을 배경으로 탐스럽게 달려있는 빨간 감들이나 들바람에
하느작거리는 억새플 무리, 널따랗게 펼쳐진 누런 논밭을 보면 모처럼
차분한 행복감에 젖어든다.

그러다가도 다시 실행활 속에서 허둥대다 보면 때로는 많은 갈등과 고뇌를
겪게 되고 분노마저 삼키며 살아가게 된다.

특히나 소란스런 정치판은 제외하고라도 우리 주위에서 규제법이 있으나
마나 계속되는 자연훼손, 환경파괴.오염 현상, 부도덕.무질서 현상을 보게
되면 안타깝기 그지없고 모처럼의 행복감이 다 사라져 버리고 만다.

우리의 1인당 GNP가 1만달러를 상회하고 금년 수출액이 1,000억달러를
넘는다고 한다.

큰 기업들은 해외 투자에 경쟁적으로 열을 올리고 한 기업의 투자액의
단위가 이제는 몇 십조단위로 가히 천문학적 숫자이다.

우리의 경제력과 규모가 어느 사이에 세계적이 되었다.

한국 관광객은 돈 많은 사람,돈 잘 쓰는 사람으로 소문이 났고 심지어는
소매치기와 납치의 표적이 되었다.

며칠 전에는 "러시아"에서 한국 여행객 인질사건이 나서 세계뉴스에
오르내렸다.

더욱이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우리 시장을 넘보며 UR이니 WTO니 해서
갖가지 압력을 가하고 있다.

어떻든 우리가 세계의 무대에서 세계인의 경쟁대열에 자리매김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부유한 나라이고, 잘사는 국민인가?

94년 현재 우리나라의 국제 경쟁력 순위가 미국을 비롯한 선진 10개국은
제외하고 개발도상국 중에서도 7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뿐만 아니라 복잡한 격변의 경쟁시대에서, 이데올로기 대결보다는 국익
우선의 경쟁력대결시대에서 우리의 기술규모는 미국의 11분의 1, 일본의
8분의 1, 독일의 6분의 1이며, 기술개발력은 미국의 25분의 1, 일본의
10분의 1, 독일의 8분의 1이고, 해외기술의존도는 미국 1.8, 일본 6.7,
독일 5.1일때 우리나라는 19.5라는 사실은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계량적 결과는 그렇다고 치고 앞으로,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국력의 질과 우리 삶의 질, 그리고 우리의 의식 수준이라고 생각된다.

우리의 산업기술력.경제력은 기반구축이 확고하며 구조적 균형을 갖추고
있는가?

우리의 삶은 들뜬 거품이 아니라 차분한 질서 속에 알차게 다듬어진 수준
높은 양질의 것인가?

우리의 의식은 도덕과 상식 그리고 규범을 바탕으로 한 진취적 수준의
것인가?

바로 엊그제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떠난 직후 우리 코 앞에서 무장공비가
또다시 침투, 1명이 사살된 사건이 벌어졌다.

우리는 아직 전쟁중에 있고 다만 장기 휴전상태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실감이 난다.

한.일관계는 끊임없이 업치락 뒤치락, 개었다 흐렸다 한다.

중국의 꿍꿍이 속은 알다가도 모르는 상황이다.

요즈음 우리의 처지는 그야말로 빙판위를 걷는 심정이다.

게다가 심각한 교통문제, 나날이 더해가는 환경파괴 문제, 어처구니 없는
대형사고의 연발, 도덕.윤리의 파괴, 고위층, 지식층, 종교계, 실업계,
교육계 가릴것 없이 터져 나오는 부정부패.비리 문제, 만연되고 있는
개인주의와 집단이기주의들, 어디서부터 어떻게, 그리고 또 누가 손을 대어
해결해 나가야할지 참으로 답답하다.

흑자는 말하기를 이와 같은 현상은 사회발전과정에서 겪게되는 하나의
필연적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위의 문제들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마음과 자세"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된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책임의식이라고 생각된다.

사회조직의 일원으로서, 세계화에 동참하는 이나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키고 감당해야 할 책임의식이 중요하다.

우리에게는 우리 강토를 잘 가꾸어 보존하고 독창적 문화를 창달시키면서
세계화의 큰 물결에 성공적으로 순항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힘을 모아
땀흘려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 주위에서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흙탕물을 일으키는 무책임한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와 같은 작은 웅덩이에서는 비록 한 마리의 미꾸라지가 일으키는
흙탕물이라도 사회 전체를 더럽히고 나아가 우리전체의 시야마저 가려
버리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우리가 가을 하늘처럼 맑은 정신을 갖고 하루하루를 차분한 행복감 속에
더불어 잘 살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내가 나의 위치에서 작은일이든,
큰일이든 맡은바 책무를 정직하게, 헌신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