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의 역사는 교육이 시작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측
된다.

그러나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시켜 오늘날과 같은 근대적 개념의 소풍이
시작된 것은 근대적 교육기관이 설립되면서 부터이다.

당시에는 원족이라 해서 점심과 맛있는 음식을 갖고 소풍을 가는 날은
어린 학생뿐 아니라 중.고교생들에게도 매우 기다려지고 학창시절의 소중한
추억의 하루가 되는 날이었다.

17세기에 코메니우스는 "자역은 가장 위대한 교사"라는 주창아래 학생들이
자연의 사물을 실제로 관찰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었다.

그후 코메니우스의 주장이 교육현장에서 널리 받아들여져서 근대교육제도
의 발달과 함께 교육현장의 관행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전까지는 고전적 형태로 소풍이 실시되었었다.

어머니가 정성들여 싸준 도시락을 들고 1~2시간정도의 거리인 산이나 들,
또는 명승고적지를 교사의 인솔아래 줄을 지어 걸어갔다.

오는 것이다.

그란 최근 우리 초.중.고교의 소풍 풍속도는 크게 달라지고 있다.

우선 집에서 준비하는 도시락 대신 많은 학생들이 햄버거등으로 점심을
때운다.

따라서 선생님의 도시락을 준비하던 학부모의 따스한 인정도 점점 엷어져
가고 있다.

맞벌이가정이 늘어나면서 학부모들이 도시락준비를 부담스럽게 느끼기
때문이다.

또학생들 자신도 도시락 보다 햄버거등 패스트 푸드가 입맛에 맞는 모양
이다.

소풍장소도 위락시설등으로 바뀌고 있다.

70년대말 이후 도시를 중심으로 지역사회의 교통문제가 복잡해지고 일반
관광객의 증가로 여러가지 안전문제와 비교육적 현상이 늘어나 소풍에
적합한 목적지를 찾기 어렵게 되었기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위락시설등에서 놀이기구를 타며 하루를 지낸다.

그뿐 아니라 학급 또는 학년단위의 장기자랑등 단체모임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학생들이 "따로 노는데 익숙해져 단체프로그램을 진행가기가 힘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소풍은 교실밖서 배우는 "현장학습"이라기 보다 공부에서 해방
되어 자유롭게 노는 날이 되고 말았다.

근래 일부 초.중교에서는 소풍과 운동회대신 도시근교의 모텔등에 숙박
하면서 "극기훈련"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있다 한다.

과보호속에서 자란 우리 초.중.고교생에게 필요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이같은 현상은 우리나라가 산업화되고 풍요로와진 결과의 한 단면일것
같다.

소풍이 사회변화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 것도 어쩌면 어쩔수없는 현상
일지 모른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