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만달러시대 한국경제의 과제 ]]]


한국경제는 이제 1만달러를 넘어서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물론 1인당 GNP는 경제성장의 수준을 설명해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GNP는 그간 경제규모의 변화를 표시해주는 다른 적절한 대체지표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가단위경제의 대표적인 지표로 여겨져 왔다.

대표지표로 사용돼온 것은 사실이지만 GNP는 국민경제의 구조적 특징이나
실상을 그대로 설명하지는 못한다는 결함때문에 그저 편의상의 지표로
사용돼 왔다는 것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1만달러라는 소득지표가 지나치게 훤전될 필요는 없으나, 어쨌든
1만달러라는 숫자는 그동안 개발연대를 지나오면서 경제정책과 경제운영의
시행착오를 적잖게 겪으면서도 국민적 노력에 의해서 성취한 보람있는
소산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여기서 1만달러 자체에 대해 지나치게 의의를 부여하는 것보다는
1만달러시대에 조우한 국제적 정황의 변화와 국내적 정책환경의 변화에 대해
더많은 긴장감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1만달러시대 국민경제의 과제가 새롭게 추출되고
새로운 발전책 강구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몇해동안의 국제적 여건은 가위 1세기나 반세기에 걸쳐야 경험할
수 있는 정도의 큰 질량적 변화였다는 느낌이 든다.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이후 WTO(세계무역기구)체제하의 국제교역관계는
그이전과 비교해 볼때 어찌보면 혁명적이라 할만큼 전혀 다른 성격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그동안 국제적으로 통용되어왔던 관세장벽 비관세장벽 등에 의한
보호정책은 이제는 전혀 적용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정치적 유대관계나 경제발전 격차에 따른 선진국의 후진국및 개발도상국에
대한 온정주의는 이제 그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이제 정치적 유대관계나 경제발전 격차를 초월해서 각국이 대등한
입장에서 철두철미 경제적 이해관계에 입각한 상호주의 원칙만이 통용되는
시대로 돌입하였다.

이 상호주의에는 필연적으로 경제 모든 부문에 걸친 시장의 개방이
요구된다.

공산품시장은 더말할 나위 없거니와 농축산물시장 금융시장 등등 우리만이
장벽을 치고 간직할 수 있는 성역은 이미 소멸되어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가하면 이와같은 조류속에서 EU나 NAFTA등 주로 선진국들의
블록화와 일본의 경제적 우월성에 따른 경제패권주의와 기술패권주의의
흐름은 WTO체제를 위태롭게 하고 있는등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갖가지
국제여건변화는 우리에게 심각한 위협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환경의 변화속에서 또한 겪고있는 세계적 조류의 하나는
"국제화"에서 "세계화"로의 진행이다.

그동안 강조되어 왔던 국제화와 지금 인구에 널리 회자되고있는 세계화에
대해서 절연하게 개념상의 차이를 규정해본다기보다는 그와같은 조류변화의
내력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지않을수 없다.

우리는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직후 그파장에 대해 매우 긴장하며 국제화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이때의 긴장과 국제화가 강조된 이유는 우리가 거부할수 없는 상호주의와
시장개방에 직면하면서 새로운 국제경쟁력 우위의 확보가 불가피한
긴급과제로서 등장하였기 때문이었다.

어느모로 보나 이당시의 국제화는 국제경쟁력 우위확보에 주된 관심이
집중되었던 것으로 볼수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세계화는 무한경쟁시대에
있어서의 국제경쟁력의 우위 확보와 아울러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국력과
경제적 능력에 상응한 역할, 즉 우리위상에 맞는 몫을 해야한다는 협력의
문제를 함께 지니고 있는것이라고 볼수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1만달러 소득수준에 부합한 국제적 기여를 해야한다는
뜻이 된다.

경쟁력 우위확보만 고집하고 국제적 협력에 인색하다면 국제적으로
소외되고 나아가서는 교역관계에도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수 밖에없다.

다시말해 세계화는 경쟁과 협력을 함께 내포하는 세계적 조류를 뜻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세계적 정황의 변화추세는 당연히 국내정책환경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있다.

그동안 한국은 경제개발과정에서 정부의 세제 금융 행정등에 걸친 지원을
통해 기업 그리고 국민경제의 경쟁력을 부추기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해왔다.

자본축적적 세제의 특징을 지닌 세제의 적용, 정책금융을 위시한
금융지원, 경제개발지원위주의 행정관행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민주화의 진행은 필연적으로 경제적 민주화 요구를
수반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국민의 복지요구, 경제적 정의 실현의 요구등으로서 나타난다.

정부는 이러한 대중적 요구의 충족을 위해 점차 자본축적적 세제로부터
사회정책적 세제로 바꾸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하게 되는것이 불가피하게
될것이다.

또한 금융면에서도 정부는 이미 정책금융의 폐지를 표방한 바 있거니와
금융자율화 금리자유화로 나아가고 있다.

행정의 중점 역시 경제지원행정중심에서 복지지원 행정중심으로 이행돼
나가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거나 예상되는 세제 금융 행정등의 제도및 관행의 변화는
정부가 기업이나 국민경제활동에 대한 그동안의 적극적 지원태세로부터
크게 후퇴하게 됨을 뜻한다.

그리고 그동안 기업및 국민경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결정적 기여를 한
경제사회적 요인의 하나였던 저임금근로자층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것도
중요한 변화중 하나다.

위에서 간단히 살펴본바와 같이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국제적 국내적
여건의 현저한 변화는 기업과 국민경제에 대해 진정한 자윙능력을 갖춘
강인한 체질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끔 하고 있다.

객관적 상황의 급격한 변화는 명실상부한 실천적 효율적 경영혁신
기술혁신만이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는 길이 된다는 점을 인식시키고
있다.

그동안 실천없는 구두선으로써만 경영혁신 기술혁신을 외쳐도 통용될수
있었던 것은 정부지원 저임금등 타율적 경쟁력 부여요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러한 경쟁력부여요인들이 퇴조하고있는 시점에서 진정한 경영혁신
기술혁신을 이루지 못한 기업들은 필연적으로 도태될수밖에 없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경영혁신및 기술혁신에 더해서 심각하게 제기하고 싶은것이 의식혁신의
문제이다.

의식혁신이 경영혁신 기술혁신과 병렬적으로 제기되는 이유는 의식혁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식혁신은 실제로는 경영혁신 기술혁신의 선행조건이라고
할수있다.

의식구조의 성숙화가 수반되지 않는 1만달러란 한낱 신기루와 같은
지표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동안 빈발했던 교량 건물등의 붕괴 참사들을 상기해 본다.

만약 그런 공사에 참여한 기업인이 진정 양식 있는 기업가정신을 지니고,
기술진이 장인정신과도 같은 집념어린 기술자정신을 지니고, 근로자가
성실한 근면정신을 지니고, 공무원이 투철한 공직자정신을 지니고
임했더라면 그와같은 사고는 있을수 없는것이 아니겠는가.

의식구조의 미성숙은 바로 다름아닌 후진성을 의미한다.

물적 일시적 요인에 의해서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의식구조의
후진성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그것은 곧 경제성장의 한계로 작용할수밖에
없다.

각 직능층의 투철한 직업정신의 성숙이 있어야만 1만달러이후 경제성장이
순조롭게 지속될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투철한 직업정신과 아울러 기업이든 민족이든 국가든 조직의 대소를
불문하고 단위조직내에 신뢰관계가 뿌리깊게 형성될수 있는 장치및 제도
그리고 분위기의 조성에 의한 집단생산성의 극대화가 앞으로의 지속적
성장의 관건이 될것이다.

1만달러시대는 공교롭게도 기술집약시대 그리고 정보화시대와 맞물려있다.

한국의 경우 기술집약시대에 대한 대비는 상당히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다.

앞으로의 산업구조에 적합한 기술형의 설정과 관련기술의 도입및 개발을
통한 기술혁신이 지체없이 이루어져야만 기술집약시대에 낙오없는 경쟁력을
지닐수있게 된다.

진부화산업역시 조속한 정리 또는 후발개발도상국으로의 이전을 완료해야
할것이다.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현재와 같이 진부화산업부문과 고급기술산업부문
모두에 걸쳐 경쟁관계에서 후발개발도상국과 선진기술국 양쪽의 협공을 받게
되는 부담을 계속 안게 된다.

한국에서 정보화시대에 대한 대비는 상대적으로 상당히 진전되어오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이부문의 발전속도가 놀랍게 빠른 특징을 지니고 있는 점을 감안,
선진국에 대한 추적을 촌시도 늦추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와 아울러 사회간접자본투자가 더욱 과감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허슈만의 표현을 빌리면 직접생산활동(DPA)에 대한 투자와 사회간접자본
(SOC)투자는 어느정도 순환적으로 이루어질수 있는 것이지만 기술집약시대와
정보화시대가 맞물려있는 지금 사회간접자본투자의 집중화는 그어느때보다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 사안이다.

사회간접자본투자라 할때 협의의 그것만이 아니라 교육 연구부문투자등
국가경쟁력의 기초가 되는 부문에 대한 중점투자 역시 1만달러시대의 중요한
과제가 된다.

평화적 통일의 전제라 할수 있는 민족공동체의식의 조성을 위해서는
예민한 정치문제에 앞선 남북한 경제교류협력 역시 1만달러시대의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남북경제교류의 방식은 무엇보다도 시혜적 시각이 아니라 상호 경제적
이익에 기초하여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교류협력은 양쪽에 이익이 있을때 실현되기가 쉽고 장기적으로
계속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고임금과 지가상승으로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는 섬유 의류 신발
전자기기조립등 노동집약적 산업을 북한에 이전하면 남북한 양쪽에 이득이
될 것으로 믿는다.

따라서 정부와 기업 모두가 경제교류협력을 경제원칙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은 선심공세나 과장홍보 과당경쟁등 경제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자제하면서 경제논리에 충실한 남북경제교류협력을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분단국의 특수성 때문에 경제협력에서 정치문제를 완전히 배제할수는
없겠지만 가능한 한 경제문제는 경제논리로 풀어갈때 남북경제관계의 안정적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남북한간 경제교류협력관계는 상호 불신의 벽을 어떻게
낮춰갈 것인가가 큰 과제이다.

또한 북한이 앞으로 개방 개혁 그리고 남한과의 경제교류협력에 어느 정도
적극적일 것인가의 여하도 관건이라 할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북한의 경제정책이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가 주목된다.

끝으로 1만달러시대의 경제적 사회적 성향을 생각해 본다.

각국의 경험으로 보아 그 국민경제가 이 시기를 어떻게 소화했느냐에
따라 선진국 진입을 원활케 해주는 착실한 준비단계가 되기도 하고 정체에
머물게 하기도 한다.

이 시기는 대체로 기본생활이 충족되고 빈곤으로부터의 해방감에 젖게
됨으로써 경제적 긴장감이 해이되기 쉬운 단계이다.

따라서 사회생활의 방만화, 소비생활의 무절제, 부적정투자의 성행등
부정적 현상이 야기되기 쉽다.

특히 소비는 전시효과의 연쇄적 확산, 절제없는 과시소비의 발호 등을
포함한 과대소비풍조가 만연되기 쉽다.

투자는 무절제한 소비에 영합하는 부적정투자나 비생산적 투자로
흐름으로써 사회경제적 잉여가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부문으로 흘러들어가지
못하게 되기 쉽다.

우리의 경우도 왕왕 이런 현상들에 대한 국민적 경고가 나오곤 하는데
지금은 바로 매우 냉정하게 대처해야 할 국면이라 하겠다.

국가에 따라서는 이러한 현상을 강력한 제도적 장치나 국민의 건전한
기풍에 의해서 극복했으나 제도적 장치나 건전한 기풍이 아직 자리잡혀지지
않은 국가의 경우는 이를 극복하지못하고 실패하고 만 경험이 많다.

슬기롭게 이를 극복한 국가의 경우는 이 시기의 경제적 잉여를 낭비없이
축적하여 선진단계로의 진입을 순탄하게 완료했고 이의 극복에 실패한
국가는 선진단계로의 진입궤도에서 이탈하거나 현단계에서 그대로 머문채
정체한 사례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들을 타산지석으로 해서 1만달러시대를 선진국 진입의
착실한 궤도를 까는 생산적 기간으로 삼아야만 할 것이다.

1만달러시대는 1인당 GNP 1만달러라는 지표 자체에 대한 감상적
집착보다도 이를 국민경제 체질강화의 자산으로 삼는 의식과 지혜가
모아져야만 할 시기인 것으로 믿는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