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정치.경제제도와 이념의 진화과정으로 본 역사는 동.서진영간의
냉전종식과 더불어 끝났다고 주장한 "역사의 종언"( 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이란 저서를 통해 더욱 유명해진 프란시스
후꾸야마( Francis Fnknyama )의 새로운 저서 "신뢰"( Trust )가 또다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후꾸야마는 새 저서에서 경제성장과 발전을 설명함에 있어 신뢰라는
문화적요소 혹은 사회적자본( Social Capital )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후꾸야마의 새로운 주장에 대한 정통경제학자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최근들어 한국등 동아시아의 유교권 경제들이 경험한 경제적 성공사례를
유교사상과 관련하여 설명하려는 일부견해에 대한 정통경제학자들의 강한
부정적 반응과 비슷한 것으로 볼수 있다.

이들은 막스 웨버( max weber )를 위시한 상당수의 학자들이 과거 중국의
근대화를 막은 가장 큰 장애요소가 바로 유교사상이었다고 주장한 사실에
비추어 이러한 비경제적 요소에 의해 경제현상을 설명하려는 접근방법을
일축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경제개발이 부진했을때 사.농.공.상(사.농.공.상)
사상과 같은 유교적 전통이 경제개발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는가.

실제 후꾸야마의 새로운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데는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어느정도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생활이 사회생활과 깊은 관계를 가질 뿐아니라, 그 사회의
전통 도덕 관습과 분리해서 이해할수 없다.

즉 경제생활을 문화와 완전히 격리해서 생각할수 없다"는 후꾸야마의
주장에는 큰 무리가 없는것 또한 사실이다.

흥미롭게도 세계적 석학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바 있는 켄네스
애로우( Kenneth Arrow )교수도 일찍이 "신뢰란 사회체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윤할유"라고 주장한바 있다.

즉 애로우 교수는 어느사회체제이던 그 사회체제의 능율을 향상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바로 이 신뢰라는 요소가 해준다고 보는 것이다.

필자는 이글을 통해 후꾸야마의 새로운 분석과 주장에 대한 찬.반논의를
펼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은 "저신뢰사회"( low-trust society )로 규정하고 있는
후꾸야마의 논리전개에 우리국민 모두의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신뢰를
애로운 교수적인 입장에서 신뢰는 한번 생각해 보려는 것이 주목적이다.

우선 후꾸야마의 주장과 같이 한국을 일본에 비해 신뢰도가 낮은 사회로
보는데에 큰 무리가 없다고 우리모두가 솔직히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비록 모든 경제적 여건이 동일하더라도 일본에 비해 신뢰도가
낮은 만큼 우리나라는 능률면에서 일본에 비해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신뢰도가 낮은 사회일수록 모든 경제행위에 수반되는 거래비용이 높을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모기업과 계열기업 그리고 하청업체간의 거래에서도 상호신뢰도가
낮을 경우 납품검사등에 따르는 거래비용이 높을 것이다.

또한 후꾸야마의 주장처럼 일본에비해 저신뢰사회인 우리나라는 일본의
비가족전문경영인 위주 기업경영체제에 비해 가족중심경영체제에 따르는
각종 비능율도 감내해야 할 것이다.

저신뢰사회는 국제거래에 있어서도 높은 거래비용을 지불할 수 밖에
없다는 것도 당연한 이치이다.

정보화관련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지구촌화가 가속된데다가
냉전종식이후 세계각국이 국가경영에 있어 경제우선주의를 채택함에 따라
기업간 경쟁도 세계화, 세계시장에서 기업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음은
모두가 잘아는 사실이다.

그결과 세계적인 기업들의 각종경영혁신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으며,
기업간 전략적 제휴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전략적제휴, 특히 외국기업과의 제휴는 상호신뢰기반
없이는 어려울 것이 자명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이제 선진국으로 발돋움해야하는 전환점에 와있기 때문에
선진.일류기업들과의 각종 전략적 제휴를 통한 경영기법및 기타 기술획득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기업들은 일본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필요한 제휴를 얻어낼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다른 예를들면 대외시장 개방을 약속한후, 다른한편으로 세무사찰등의
방법으로 외국상품의 수입을 막는다면 국가신뢰도는 실추될 것이고
우리나라와 같이 협상력이 약한나라의 경우 반드시 나중에 더큰 양보를 통해
대가를 지불할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사회의 신뢰도를 증진시켜 나갈 것인가.

오랜 전통과 관습을 바꾸는 것은 쉽지도 않을뿐 아니라 상당한 기간에
걸쳐 범국민적인 노력이 따라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따라서 우리의 바람직스럽지 못한 전통과 문화를 좀더 긴안목에서
개선하려는 우리국민모두의 노력이 경주되어야 하겠다.

차세대 교육에 이러한 노력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남을 이해하고 남과 더불어 살줄아는 지혜를 길러주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된다는 공동체적 사고를 길러주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교육이 실천에 옮겨 질때 정직 친절 질서 청결 준법이 존중되는
사회가 되고, 우리사회의 신뢰도는 자동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교육은 물론 학교에서부터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가정에서 학교교육과 일치되는 교육이 부모의
솔선수범을 통해 이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가정교육과 직장, 그리고 사회교육이 학교교육과 일치하지 않을때 아무리
좋은 학교교육도 큰 효과가 있을수 없을 것이 아닌가.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이웃 일본으로부터 배울것이 많다고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