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에서 인덕원 사거리에 이르는 국도의 판교쪽 약 5km 구간에는 길 양옆
으로 느티나무가 늘어서 있다.

수십년이상 된것들로 여름이면 길 양옆으로 우거져 녹음의 터널을 이루고
초가을부터 늦가을에 이르는 두달여 동안은 색색으로 변해가는 단풍의 장관
을 이루어 이 길을 지나는 모든 이들에게 큰 기쁨을 준다.

나는 직장이 판교에서 인덕원에 이르는 중간쯤 위치하고 있는 덕분에 벌써
아흡해 가까이를 매일 아침저녁 하루에 두번씩 이 길을 지나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런 아름다운 나무를 가로수로 심을 생각을 하였던,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분들께 감사하며 또 다른 이들도 이 길을 지날 기회를
가져 기쁨을 나누어 갖기를 바란다.

단풍의 장관은 다음주께부터면 시작되겠지만 나의 메마른 표현능력으로
그 오묘한 색깔의 변화와 아름다움을 일일이 다 전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 나무들이 판교~인덕원간 도로확장 계획으로 곧 잘려나갈
형편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이 계획은 벌써 오래전에 세워진 것으로 이미 인덕원에서 공사가 시작되어
곧 느티나무 길에까지 이르게 될 텐데 유감스럽게도 그럴 경우 이 나무들이
어떻게 될것인지에 대해 지방정부나 관할 행정당국으로부터 어떤 설명이나
공고도 없었다.

다만 소문으로 주민중 몇몇이 선거전에 이 나무들의 이야기를 지금의
민선시장에게 전달하였고 시장은 그것을 살려 보겠다고 공약하였다고 한다.

나무를 살리는 길은 2차선을 4차선으로 확장할때 한쪽켠의 나무들을 모두
옮겨 심거나 혹은 나무를 중앙분리대로 하여 그 옆으로 길을 확장하는
것이다.

이중 어느 방법이 정해지든 그로인해 공사기간이 연장될 것은 틀림없고
더욱이 도로확장이라는 것이 항상 전의 도로가 있던대로 따라가는 것은
아니어서 설사 도로중앙에 나무를 남겨 두는 방법을 택한다 하더라도 그중
일부는 상할 것이 명백하다.

정말로 나무를 지키고자 한다면 많은 예산과 기술, 시간뿐 아니라 지역
환경을 지키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와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여기서 우리는 "환경을 지킨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그것은 단순히 자연의 상태를 파괴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한다는 것 혹은
공기와 물과 산천을 깨끗이 유지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나무란 단순히 아름답고 공기를 맑게 해줄뿐 아니라 마음을 안정시키고
생각할 여유를 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현들이 산수에 대하여 각별했던 사실에서나, 혹은 외국에서도
빌딩과 자동차들의 숲속에서 뛰어난 지성이나 철학적 사색이 싹텄다는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등에서 그것을 알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몇십년을 키워온 이 길의 수백그루 나무가 자동차의
보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 잘려 나가는 것은 단순한 자연의 훼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정서체계를 파괴하는 일이라고도 주장해 볼수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느티나무 길 보존의 요구는 이 길을 이용하는 일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국가예산을 낭비하는 것으로 반국가적이며 이기적
발상이라고 매도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30~40여년간 수없이 그러한 국가발전지상주의의 논리에
밀려 우리의 주변에서 숨쉴 공간, 생각할 공간, 느낄수 있는 공간을 파괴
하는데 앞장서 왔다.

그 결과 도시에서는 녹지가 사라지고 빌딩과 공장과 아파트들이 들어
찼으며 미관이나 생태계를 무시하고 오로지 공사비 절약만을 고려해 건설된
고속도로들이 우리산과 들의 중턱을 제멋대로 가로지르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가 자랑하는 발전의 증거이다.

이제 세계화와 삶의 질을 논하는 오늘날 우리 모두를 위해,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무엇이 진정한 발전인가 다시한번 음미해 볼수 있기를 제안
하고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일자).